ep.27_ 링링의 결혼과 실시간 송금 알림의 기적
목요일 오후 4시.
사일로의 내전이 겨우 봉합되어 가던 통합 본부의 사내 메신저(Slack)에 전체 알림이 울렸다. 발신자는 해외팀 링링.
[Notice: 개인 프로젝트 런칭 공유의 건]
프로젝트명: 링링 결혼 (M&A)
일시/장소: 이번 주 토요일 13:00, 여의도 K웨딩홀 (교통 및 식대 가성비 최우수 등급)
비고: 참석은 자율(참석률 데이터 수집 안 함). 축의금은 아래 카카오페이 QR코드로 송금 권장. (식권 미수령 시 답례품 와인으로 대체. 단, 와인 도매가가 식대보다 3천 원 저렴하므로 가급적 식사 요망)
사무실이 발칵 뒤집혔다.
양 과장이 파티션 위로 미어캣처럼 고개를 내밀었다.
"대리님! 결혼하십니까?! 아니, 연애를 하긴 하셨어요? 상대는 사람입니까, 챗GPT입니까?"
링링이 듀얼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인간 남성입니다. 감정 기복(Volatility)이 적고 제 데이터 모델과 호환성이 높으며, 무엇보다 자산 운용에 대한 리스크 헤지(Hedge) 성향이 완벽히 일치하여 최종 합병(Merge)을 승인했습니다."
최 부장이 믹스커피를 타다 말고 혀를 내둘렀다.
"아이고, 독한 기집애. 결혼을 무슨 기업 인수합병 하듯이 하냐. 남자가 불쌍하다, 불쌍해."
링링의 지독한 '자본주의적 행보'는 본부 내에서 악명이 높았다. 그녀는 초과 수당이 없으면 1분도 야근하지 않았고, 자신의 기여도를 인센티브로 환산하는 데 천재적인 소시오패스였다. 우리는 모두 그녀의 남편 될 사람의 멘탈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토요일을 맞이했다.
토요일 오후 1시. 여의도 K웨딩홀.
식장에 도착한 우리 본부 사람들은 다시 한번 혀를 내둘렀다. 링링의 결혼식은 그녀가 짠 엑셀 매크로처럼 군더더기 없이 '1.5배속'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주례 없음. 쓸데없는 화촉 점화 생략. 축가는 신랑의 짧은 1절 컷.
신부 대기실의 링링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만, 평소처럼 안경을 치켜올리며 식권 배부 현황과 하객 트래픽을 매의 눈으로 체크하고 있었다.
예식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갈 즈음, 마이크가 신부 측 혼주석으로 넘어갔다.
수트 핏이 어색한, 낡고 마른 중년 사내. 링링의 아버지였다. 일찍 아내를 여의고 홀로 식당을 하며 링링을 키웠다고 했다. 그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A4 용지를 꺼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부로 이 훌륭한 신부의 1대 주주 자리에서 물러나는, 링링이 애비입니다."
통역을 맡은 해외팀의 막내가 링링 부친의 말을 옮기자, 하객석에서 옅은 웃음이 터졌다.
"저는 참 무능한 경영자였습니다. 사람을 함부로 믿어 보증을 섰고, 제 인생의 재무제표는 늘 만년 적자였지요. 링링이가 열두 살이 되던 해, 빚쟁이들이 가게에 들이닥쳐 빨간딱지를 붙이던 날... 제 딸이 제 품에서 낡은 가계부를 뺏어 들었던 날을 기억합니다."
장내가 조용해졌다. 단상 위의 링링이 고개를 숙였다.
"그 어린것이 빨간 펜을 들고, 제 마이너스 통장의 복리를 계산하더군요. 그러더니 제게 말했습니다. '아빠. 감정적으로 사람 믿지 마. 숫자는 절대 배신 안 해.'... 그날부터 우리 집의 실질적인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열두 살짜리 링링이었습니다."
양 과장이 흠칫 놀라며 턱을 괴었다. 최 부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딸아. 남들은 네가 돈독이 올랐다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보그라고 수군거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빠는 안다. 네가 그 어린 나이에, 이 무능한 아빠와 무너지는 집구석을 지키기 위해 '숫자'라는 가장 차가운 갑옷을 입었다는 걸. 네가 악착같이 엑셀을 두드린 덕분에 우리 집은 상장폐지를 면했다. 고생 많았다, 나의 완벽한 CFO."
하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단상 위에 서 있던 링링. 절대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사이보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부케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안경알 너머로 무언가를 훔쳐내는 듯한 움직임.
최 부장이 눈시울을 붉히며 옆에 앉은 양 과장의 허벅지를 쳤다.
"아이고, 저 독한 기집애가 우네... 속에는 피눈물이 차 있었던 거야. 아이고오..."
양 과장 역시 코를 훌쩍이며 냅킨으로 눈가를 훔쳤다.
나는 조용히 팔짱을 끼고 단상 위의 링링을 응시했다.
나 역시 코끝이 찡해지려던 찰나, 나는 보았다.
부케 뒤에 교묘하게 숨겨진 스마트폰. 그리고 링링의 시선이 아래로 꽂혀 있는 정확한 각도.
그녀의 어깨가 떨린 것은 오열 때문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부도난 감사보고서' 축사가 하객들의 측은지심을 완벽하게 자극하면서, 그녀의 스마트폰 위로 [카카오페이 축의금 송금 완료] 팝업 알림이 1초에 한 번씩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울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입력을 초과하는 막대한 현금 트래픽(Traffic) 앞에서, 터져 나오는 '자본주의적 환희'의 웃음을 부케 뒤로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독한 기집애... 내 감동 물어내라."
하지만 묘하게도 안도감이 들었다. 그녀는 과거의 상처에 매몰된 가련한 피해자가 아니라, 그 결핍마저 완벽한 수익 모델로 전환해 버린 생존의 달인이었으니까.
예식이 끝나고 피로연장. 갈비탕 냄새가 진동하는 원형 테이블에 통합 본부 22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파티션을 사이에 두고 내전을 벌이던 국내팀과 해외팀이었다. 하지만 링링의 서사(그리고 각자가 뜯긴 축의금)가 가져온 거대한 파장 앞에서, 사일로(Silo)의 벽은 허무하게 무너져 있었다.
최 부장이 뷔페에서 떠온 육회를 듬뿍 집어 양 과장의 접시에 덜어주었다.
"양 과장. 너 들었지? 링링이 저거, 보통 멘탈이 아니야. 어릴 때부터 빚쟁이들 상대하며 숫자 굴렸으니 데이터에 저렇게 미친 듯이 집착하지."
양 과장이 갈비탕 국물을 들이켜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 지독한 결핍. 저 생존 본능. 부장님, 솔직히 저런 애가 우리 본부에 있다는 게 축복 아닙니까?"
"당연하지! 야, 다음 주부터 남대문 도매상 데이터베이스화 작업 들어갈 때, 무조건 링링이한테 핵심 업무 다 몰아줘. 인센티브 조건 최대로 걸어놓으면, 쟤는 지 신혼집 대출금 갚으려고 일본 시장이든 아세안 시장이든 뼈까지 씹어 먹을 거다."
"명 받았습니다. 제가 링링 대리 그 까칠한 파이썬 언어, 부장님 알아들으시게 인간의 언어로 다 통역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본부 실적은 링링 대리의 주택담보대출 상환 의지에 달렸습니다!"
정 차장(국내팀)이 맥주잔을 들고일어났다.
"자자! 우리 본부의 완벽한 CFO 링링 대리의 유부녀 등극을 축하하며! 해외팀 국내팀, 지지고 볶아도 결국 링링이 대출금 갚아주려면 한 배 탄 거 아닙니까. 원샷합시다!"
쨍-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22개의 유리잔이 부딪혔다.
나는 조용히 맥주를 마시며 그들을 지켜보았다.
이들은 감동이나 동정심으로 하나가 된 것이 아니었다. '결핍을 원동력으로 삼는 완벽한 엔진(링링)'을 발견했고, 그 엔진에 올라타면 자신들의 실적(생존)도 보장된다는 철저하고도 이기적인 계산 덕분에 뭉친 것이다.
이 얼마나 완벽하고도 눈물겨운 자본주의적 연대인가.
나는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은행 앱을 켰다.
이미 축의금을 냈지만, 링링의 계좌로 조용히 50만 원을 추가 송금했다.
수취인 메모란에는 이렇게 적었다.
[신혼여행 복귀 후, 아세안 B2B 데이터 크롤링 외주 선급금. K]
1분 뒤, 신혼여행지로 떠나는 공항 리무진에 타 있을 링링에게서 칼같이 답장이 왔다.
[입금 확인. 월요일 08:00 데이터 추출 완료 예정. 감사합니다 주주님.]
나는 남은 맥주를 단숨에 털어 넣었다.
통합 본부의 기어(Gear)가, 드디어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뭔가가 되려나 싶은 주말 오후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Q1. 조직의 '악역(Villain)'은 어떻게 탄생합니까?
"이기적이다", "돈만 밝힌다"며 손가락질받는 까칠한 팀원. 하지만 그 차가운 갑옷 이면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쳐온 처절한 생존의 서사가 숨어있기 마련입니다. 당신은 눈앞에 보이는 직원의 불량한 '태도'만 통제하려 합니까, 아니면 그를 그렇게 만든 '진짜 결핍'을 들여다볼 용기가 있습니까?
Q2. '가족 같은 팀'이라는 환상을 버리셨습니까?
눈물과 감동만으로는 파티션 너머의 살벌한 밥그릇 싸움을 영원히 멈출 수 없습니다. 가장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연대는, 서로의 이기심과 욕망이 하나의 목표로 완벽하게 맞물릴 때 비로소 탄생합니다. 당신은 조직에 허구의 낭만(가족주의)을 강요합니까, 아니면 철저하고 정교한 '이익의 교집합'을 설계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