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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재테크 미션] 196>내가 조상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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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Ga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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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 05





내가 조상이 되고




내 생애 가장 빛나는 날은

1973년 9월 11일이다.



그렇게 나는 태어났다.

여자아이로

내 첫 만남이 엄마였겠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하고

나는 내 엄마와 함께 커갈 수 없었지만

내 어린 시절은

의례적인 삶이었으리라.



그렇게 나는 육십에 선물 받은

5남매를 둔 할머니의

첫 손녀가 되었고

그 아홉의 손자 손녀 중

내가 그 첫 번째다.



내 할머니는 내게 엄마셨다.

태어나 그렇게 두 돌이 되기 전

할머니와 나의 운명은

그렇게 십 오년을 함께 살았다.

그래서 내 할머니를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알 것 같다.



내 할머니는

나를 많이 존중해 주셨다.

늘 내게 사랑을 주셨다.

심하게 홍시 하나를 얻어 오셔도

어린 손녀주려

손수건에 다 터지도록 싸들고 오셔서

나에게 먹이셨다.



가난한 할머니께선

잔칫집에 혼자 가시면

한복 안 바지주머니에

뭘 그렇게 주섬주섬 넣어 오셔선

가늘고 어린 내가 먹는 것엔

늘 행복해 하셨다.

너무도 과분하게 아끼셨다.

5~6살까지 업고 다니셨다.



그땐 몰랐다.

할머니가 늙은 사람이란 걸

그렇게 나는 지극정성 할머니 손에서 컸다.

방학이면 늘 기차를 태워 데리고 다니셨고

온 동네 동냥한 먹거리들은

온통 내 몫이었다.



참으로 위대한 사랑이었다.

늘 내가 불쌍하다고

늘 나만 보면 그렇게 부르셨다.

불쌍한 것, 불쌍한 것.

그렇게 나는 불쌍해서 황송한

할머니의 대접과 신뢰를 받으며 자랐다.



지금 생각해 돌아보면

나는 할머니 덕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것에 틀림이 없다.

신세 망치는 어긋난 길 앞에 설 때마다

나는 할머니의 사랑에 어긋나지 않도록

나 자신에게 엄청 노력했다.

그 어떤 혼선 앞에서

혼자 남아 설 때도 그랬다.



할머니가 떠나가고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 주는 이를 잃는 슬픔은

무능한 현실 앞에

헤어 나올 수 있는 용기가 되었다.



성격을 바꾸고

누군가에게 비위를 맞추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버릇은

이때부터 생겼다.

뒤늦게

내가 잘 되어야

할머니께서 주신 사랑에

빚 갚은 일.



재능과 능력이 없어서

남들의 수십 수백 배로 시도했고

절대 안 되는 일은 만들지 않았다.

다들 가난한 동네

가난한 친구들 속에

가난한 마인드 안에서

잘될 리 없다.

미련 없이 그 안을 박차고 나왔다.



근근이 먹고 사는 사람들이 싫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보였고

성공한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빈손으로 맨손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성공을 위해

끼니를 아끼고

하루 24시간 밖에 없는 걸 억울해 하며

저절로 철이 들었고

그로 인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무엇인지 적기 시작했다.



자존심과 자존감

내게 선물하고 싶은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이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밥은 굶어도 책은 굶주리지 않았다.



돈 벌어 책을 사도

남의 책은 빌려 읽지 않는 자존심도 지켜가며

사회수준 문화의 격식을 생겨나게 했을까.

내게 할머니는

사랑을 넘어

꿈의 작용이 되신 분이셨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낼 수 있었던 원천은

할머니의 깊은 손녀 사랑이

나를 각성시켰던 것 같다.



이젠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도

10년이 훌쩍 넘어

내 가난해방을 보시지는 못하셨지만

나는 할머니께서 남기신 숙제를

또 이렇게 풀어가고 있다.



나의 자식에게

언젠가 만나게 될 나의 손녀 손자들에게

할머니의 사랑 그대로

할머니 사랑보다 훨씬 더 뜨겁게 훨씬 치열하게

내 영토의 확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가 남기신 정신적 유산은

내가 내 새끼와 그 새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나로서는 조금은 억울했던 유년시절일 수 있지만

그 억울함에

현실을 뛰어넘는

이 강한 벽을 뛰어넘었으니

제대로 살아낸 것 같다.



내 할머니는

광산 김씨로 1912년생이시다.

일제시대에 태어나셔서

6•25 동란을 겪으시며

광복 후 자식 5남매에 나까지

손발이 닳도록 가난과 싸우시다

94살의 나이에

치매 5년을 앓으시다 돌아가셨다.



총기가 있으신 분이셨다.

아마 할머니의 영향력이

정 많은

조금은 사람 같은

나를 만드셨는지 모르겠다.

물론 만만치 않은 콤플렉스와 열등감도 함께 지녔지만

인생이란

살아보니 억울하지만

그것으로도 얻는 게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다음카페 왕비재테크 당신 또한

당신 삶에 분명

결정적 존재가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서

그 존재로부터

인생의 중요한 밑천이 된다면

때론 너무 서럽고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발목을 잡고

이를 악물어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 오더라도

가끔은 아파서 밥 한 숟가락 못 먹는 날이 있더라도

살아내어지리라.



그 사람의 지배가

당신의 영향력이 되어

좀 더 성숙한 자아로 살아가는데

책임감을 심어주는 것이 아닐까.



이젠 나 역시

그 지긋지긋한 청춘에서 벗어났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

굽신 거리며 살았던 내 영혼

이젠 그 녹슨 기억을 지우려 애쓴다.



나의 잔인한 그 시절에

나는 내 할머니가 계셔서 싸워 이길 수 있었듯

오늘 당신과 내가 물살을 거슬러 헤엄쳐 가더라도

책임과 믿음, 사랑과 신뢰로

아무도 예상치 못하는 미래를 만들어

보상받고 공유하자.



부단한 담금질과 절박한 간절함으로

그 어떤 억울함도 원망하지 않으며

신세를 지고

또 그렇게

다음 세대에게

신세를 갚으며 살자.



다음 세대는

우리를 영영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우리 삶에

생명이 생명에게

무엇을 남기고 갈 수 있다는 건

바로

사랑이고

정신이리라.



6월 6일 현충일도 그렇듯

이번 미션은

조금이라도 주고 가는 조상이,

그런 할머니가,

그런 할아버지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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