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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이아Gaia Jul 08. 2019

[왕비재테크 비밀] 내 딸 승현양에게

My Princess


19.7.08



내 딸 승현양에게


한 평 남짓 되는 중환자실에서 

내 사랑의 습작을 남긴다

내 딸이라 부르는 넌 

고귀한 믿음과 신의 축복과 

온 세상의 사랑으로 커간 건 아닐까 하는 

의문스러운 신의 영역에서 

운명이란 걸 믿어본다        


 

어제오늘 이틀이란 시간 동안 

신경과 중환자실에서 정말 무인도에 온 듯 

TV음악도인터넷도책도사람도 없는 

오롯이 혼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요행히다행히 신의 은총으로 

무사히 시술을 마치고 

엄마가 누리는 호사는 

이렇게 사랑하는 딸에게 

정말 영롱하고 맑은 정신으로 

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죽는다는 두려움은 없었지만 

혹여 누군가의 시기와 질투로 

조금의 작은 무서움도 

들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는 것과 

여태까지 살면서 엄마의 삶을 

쉼표 찍을 수 있는 

영광스러운 휴가를 얻었다고 할까         



승현아부디 넌 

이 엄마의 그림자를 보는 것만으로 알게 된 

삶의 아픔과 통증들을 

잘 승화시켜 살기를 바란다         



네가 골라준 '행복'이란 단어가 

찾아 읽어야 하는 교양도서가 아니라 

네 삶에 숨 쉬듯 묻어나는 

아주아주 익숙한 산소와 같아서 

네가 엄마에게 수술 전 

아산병원 18F 스카이 레스토랑에서 말했던 

소소한 행복 안에 네 삶을 살고 싶다는 

너의 말에 

이 엄마는 속으로 

얼마나 뭉클한 감동이었는지 모른다         



그래 승현아, 우리 그렇게 살아보자

네 삶은 네 것이니까 너의 뜻대로 

네 꿈이 사회적 명예나 성공에 있지 않고 

스스로 추구하고

바라는 바대로 살아가는 일에 

인연 맺어 살길 바란다.         



엄마의 시야에 비친 저 건너편 할아버지는 

온몸에 온통 의료장비를 꽃아 

자기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발의 아픈 할아버지가 되셔서 

소변도 요도관으로 

호흡은 산소호흡기로 

음식은 다른 관으로 

온몸엔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기 위해 

빈 터 없이 놓인 기계에 

떨어지는 링거의 방울 수는 

저 모르는 할아버지의 눈물 같은 알싸함이다

어제 저녁도 오늘 오전도 하루 두 번 30분 
가족면회에 아내로 보이는 할머니와 건장한 아들이 다녀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귀를 가까이 두 손 모아 기도를 하시고 

그것을 지켜보는 엄마는 

너도 알다시피 생각이 많으리라. 

한발 반 앞서 

내 죽음까지 와있듯 

마이클 셀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 엄마는 살아낸다는 게 무엇일까에 대해 

나름 정의를 내려 

언젠가 쓰게 될 엄마의 책 

어느 한 페이지에 기록될 오늘이 

눈물겹지 않고 감격스럽다.         



사람의 숨이란 쉬이 셀 수 없지만

승현아엄마는 그렇게 바뀌련다.

나 외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 

이 중환자실에서의 이틀은 

이 엄마 平生에 두고두고 오버랩 되는 

찰나의 영원이라고.         



P.S 

잠시만 회진과 검사 그리고 식사 그리고 잠시

승현아엄마는 살기 위해 먹었다.         



엄마가 처음 

인간이 악착같이 먹어야 하는 이유를 알았거든

여기 오기 전 

15F 병동 31호실 엄마 옆 환자는 

32세 갓 아이를 출산하고 면역이 약해 

균이 뇌를 타고 들어와 뇌염이 되고 

그것이 와전되어 기억이 상실된 상황.

매 시간 백문이 불여일견을 따라 하고 

더하기 빼기 사칙연산을 푸는데 

그 매 순간을 지켜보는 엄마는 

그저 신께 감사만 했다            



창가자리 옆인 그 아기 엄마는 

엄마 침상 커튼을 치워 밖을 보려 할 때 

아랫도리를 벗어 수건으로 가린 수치심보단 

그 아기 엄마에게 커튼을 쳐 

같이 저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불쌍한 동정심으로 같이 울었다

그녀도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나는 무엇이 그리 가슴 시린지 

자식을 품은 그녀와 나는 

단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못했지만 

서로의 고통스러운 통증에 

누구보다 가슴 아팠다.         



이 편지를 쓰고 

병실로 올라가 시간이 허락한다면 

엄마는 그녀에게 한 장의 엽서라도 써야겠다

너무 도움 안 되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일평생을 산다는 건 

정말 온 우주와 온 천지의 기운들이 

왓칭 되어야 하는 일임을 

지천명을 앞에 두고 배워간다.

앞으로도 깨닫고 배워야 할 

너무 많은 모르는 것들이 

이 엄마를 흥분되게도 하지만

이만큼 배우고 경험하고 살아냈음도 

무한한 경이로움이구나.             



신경과 선생님시술을 두 번이나 하신 영상과 선생님

이틀 그리고 지금 내 곁 바이탈을 체크하시는 중환자실 선생님까지 

그리고 권리의 양심을 배우게 한 병원의 한 분 한 분... 

아차하고 보니 보이더구나.         



온몸에 주삿바늘을 꽂아 멍이 들고 

지금은 중환자실 침대에서 50cm도 움직일 수 없이 

엄마를 옭아 맨 줄들 

그리고 손가락 끝 핑크 불빛까지 

모두 다 아름다운 건 이런 거였다

옆방 병실에서 심폐 소생을 하는 의사의 다급함이 

온 사방을 정적으로 만들 때 

살아있을 때 남겨줄 이 한 장의 글이 

너에게 세상을 사는 자신감이 되라고.         



승현아그렇게 살아라!

눈부시도록 뜨겁게

미치도록 미련 없이

열정 안에 비전을

그리고 혼에 불을 놓아 불꽃같이 살아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이뻐하며 

귀하고 귀하게 너의 온몸에 品格이 묻어난 지성으로

격 있게 살아주라         



네가 너로 하여 주변의 사람들과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어 

너란 우주에 가면 

모두 그 빛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사랑을 다해 사랑하는 이를 만나 

사랑이 주는 이 세상 존귀함에 

부끄럼 없이 받고주고 가거라.         



하나님이 있어 다음 생 우리가 천국에서 만난다면 

다시 태어나도 엄마는 승현이의 엄마할게

늘 못나고 부끄럽고 가끔은 무식한 막무가내로 

널 간간이 힘들게 한 아주 작은 시절도 

그냥 이 엄마라 받아줄 수 있었던 

우리의 모녀 사이가 

그 누군가에겐 본보기가 되어보자꾸나.

못 배운 거랑 안 배운 것의 차이처럼 

우린 서로의 존재를 깨달아 부인하며 살자             



이 글을 쓰며 부터 엄마는 

이제 울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감격과 감동의 눈물이라 할지라도 

눈물은 감정의 찌꺼기라는 불순물이기에 

지금부터 살아감에 

더 많이 웃고더 오래 사랑하고 

더 깊이 안아주며 더 멀리 바라보며 

살아있음에 눈부심에 

그 기적이 되어볼게.         



- 2019.6.14 1pm 중환자실 신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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