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수업
살다 보면 슬픈 날들이 있는 게 아니라
미친 듯 살다보면
문득 눈물이 왈칵 솟구쳐 오를 때가 있다.
길가다 넘어진 사람처럼
그 감정에 휩싸여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울 수 있는 용기.
늙어서 주책이 아니라
그 슬픈 시간마저 억울할 때가 있다.
자신과의 연락두절이다.
발등에 떨어진 불들 정리하다 보면
금세 다시 봄이 오고
밥벌이의 지겨움이 역겨워 소란 떨다보면
어느새 다시 여름이 돌아왔고,
깜깜한 앞 길 더 컴컴해지도록
일에 빠져 어둠 속에 주위를 돌아보면
가을이 내 나이 속으로 파고들어
마음 구석 아픈 거 보듬기보다
통증을 참다못해 챙겨먹는 약들 속에서
난데없는 병들은 겨울이 동터 오를까 두려운 듯
이 늙어감에 억울하기보다
정들이지 못했던 청춘의 잃어버린 시간은
그렇게 타다 남은 숯이 되어
저릿저릿 심장 한켠을 짓이기는구나.
무심한 듯 남의 인생인 듯 바라보아야
견딜 수 있을 만큼 심장을 조여 오는
그 갑갑한 통증은
생의 한가운데를 앞에 둔 어느 여자의
적막한 허공 앞에서
살을 녹여 이 편지를 쓴다.
너에게
23살 내 딸에게.
엄마는 네 나이에 결혼을 하고
내 목에 두른 것이 비단이 아닌 줄은
무모하리만큼 인정하기 싫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마 앞으로도
가난하다는 건, 돈이 없다는 건,
인생의 스토커처럼
삶에 균형을 가져다 줄 수 없음과
청춘을 눈부심으로만 시간 보낼 수 없다는 거지.
분명한 건 난 결혼을 왜 했을까?
내 살을 콕콕 눌러 꼬집어가며 떠올려보면
가난해서 부들부들 손 떠는 내게,
이 엄마는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결혼은 인생을 바꿀 수 없구나를 깨닫게 하더구나.
그런 숱한 날 속에 어느 봄날
너의 엄마가 되었다.
내 심장 위로 너를 포갠다는 기쁨은
이 세상 나만 자식 가진 줄 겸손치 못했고,
그 기쁨도 잠시
그 천둥번개 치던 수만 밤이 지나고 나니
홀연듯 넌 내가 결혼하던 그 나이,
23살로 서있네.
아니 내가 널 23년을 키웠구나.
잿더미처럼 두려웠던 빚더미 위에서
넌 그을음 없이 시커먼 자국 없이 커줬구나.
우린 전생의 무슨 사이였을까?
넌 왜 내 안으로 쑤욱 들어와
내 딸이 되었을까?
우린 인연일까? 업보일까?
그렇게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사랑한 날들
넌 내 인연이고 내 딸이고 내 사랑이었다.
딸아, 늘 소중해서
우린 더 많이 더 오래 떨어져 살았고
늘 만날 수 있다는 그리움으로
견딜 수 있었나보다.
승현아!
그 꽃다운 나이 스물셋 넌 너답게 살아라.
고집멸도 안에 널 가두지 말고
너 시간을 살아라.
무엇에 대가를 바라지 말고
너를 충전해라.
사랑에 빠지기보다
너부터 더 사랑해줘라.
어떻게 살기보다
지금 원 없이 즐겨라.
무엇을 억지로 끌어오지 말고,
그 두려움을 버려라.
힘겹다 싶으면
그것이 누구의 강요였는지 돌이켜봐라.
타이밍을 놓쳤으면
언제나 지금이 최고 빠르다.
열정이 식어버리는 날엔
엄마가 널 일으킨 어린 시절을 기억해보고
감정들이 해소가 되지 않을 땐
다 버려도 된다.
뭐든 강제로 먹은 음식은 체하듯
어떤 일이든 누군가에게 강요받은 일은 하지 마라.
엄마는 내 인생 그리 살지 못했고
엄마는 내 인생 이리 살아라 말해주는 부모가 없었다.
막연하게 지금이야 다르겠지만
네 어릴 땐 내 시간을 너에게 온전히 주지 못했고
널 떨어트려 놓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내 새끼랑 떨어져 산 그 아물지 않은 상처는
아마도 무덤까지 갈 것 같구나.
천년만년.
딸아, 미안하다.
꼭 언젠가는 사과하고 싶었다.
나도 이리 힘들었는데 넌 얼마나 아팠겠니.
우리 둘의 잘못도 아닌데
우린 세상과 맞서 싸우며
서로를 지켜낼 수 있었다 믿는다.
미안한 건,
그땐 몰랐다, 그냥 아프기만 했지.
사계는 지난 날 계절이 그리울 수 있지만
인간에게서 정이란
흐려진 그리움이 아니라 아픔이구나.
그래 불이 너무 뜨거우면
뜨거운 줄 모른다고 하던데
내 새끼 승현아,
화상 입을까 그랬을까?
서로의 거리.
우린 서로 처음이라
어찌 할 줄을 몰랐나 봐.
그러나 이젠 이 엄마가 엄마 해봤잖아.
그러니 넌 엄마 같은 엄마로 살지마.
절대, 절대로 니 새끼 니가 키워.
엄마는 내 새끼 내가 키우지 못해서
내 사랑하는 새끼가 지 새끼 키울 때
헤어지거나 이별하지 말라고
애끓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엄마 품에서 젖 얻어먹고
엄마 손으로 밥 얻어먹고
엄마 마음으로 보호받고
엄마 정성으로 매일보고 살거라.
너에게 참 미안하다.
많이 아팠지, 너 많이 힘들었지?
태어나 지금껏 밥 한 끼 차려주지 못했던 시간도
23번의 생일날 끓여주진 못했던 23그릇의 미역국도
단 한 번도 너의 머리 묶어주지 않았던 유치함도
그래도 되는 줄 알고
혼자만의 가두리 안에서
돈 벌려고 일하러 다녀 미안했다.
얼마 전 미나리 영화에서
미국 오스카상 수상을 하신
윤여정 선생님의 수상소감에서
윤여정 배우의 소감문구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두 아들 때문에 일했다는
자신을 일하게 만든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이 세상 일하는 모든 엄마들
다 울컥 했을 대사 앞에
더 늦기 전에 전해본다
진짜, 미안했다.
내 새끼 승현아!
우리에게 갑자기 찾아왔던 이별도
우리에게 갑자기 불어 닥치던 쓰나미도
우리에게 어느 날 불현듯 떨어져 살아야했던 시간도
머물지 않고 다 지나갔지만
억지로 드러내지 않는 너의 무게도
감당할 수 없었던 외로움도 다 놓아주자.
그러나 우리 서로의 마음에
비틀거림은 없었으면 한다.
엄마가 그럴 수밖에 없었음은
엄마의 정당방위고
네가 애정 받을 수 없었던 엄마의 부재는
충분히 회오리채로 돌려 맞으마.
딸,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관계는 망치지 말자.
과거 엄마 모습 그대로 받아 주렴.
엄마가 사과 할게.
그래도 나 너의 엄마라 벅찼고 뜨거웠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속 썩이지 않았던
철든 아이로 자라게 해서 미안했고,
다 커서는 말대꾸는커녕 절대복종하는
철 안든 어른 엄마 자식이 되어줘서
난 이 세상 가장 자랑스런 엄마일 수 있었다.
죽음이 한번 뿐이라 슬프듯
아마, 죽어서도
난 너의 엄마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