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이아Gaia Aug 16. 2021

[부동산투자스쿨 컬럼] 내생애 놓치면 안 될 이 세가지

석세스



내생애 놓치면 안 될 이 세가지!




열정, 의리, 믿음.

나는 나에게 이 세 가지를 지켜 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듯하다.

물론 내가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닐 테니까.





나는 학자로 살고 싶었지만

반 백 살이 되도록

그 꿈을 이루기는커녕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럼에도 나는 지금 이 삶에 적당히 만족한다.

그저 어느 한 인생으로 생을 마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내 새끼 둘에게

어미의 인생을 남기고 갈 수 있어서.





늘 책보다는 밥벌이에,

늘 글쓰기보다 먹고사는 일에

인생 50년을 쏟아 부었지만

아직도 글쟁이를 꿈꿀 수 있음은

늘 그토록 이루지 못해서 매력 있는 걸까?

지금 생각해도

열세 살에 소월의 시에 빠졌던

그 경이로움은 신기하고

지금 돌아봐도

열일곱 나이에 돈 벌고자

공장 공순이를 택했던 기억이 사뭇 안쓰럽지만

삶에서 전공은 자신이 즐기고 좋아하는 것 말고

전공이란 잘하고 뛰어나기 위해 택해야 했던

그래서 나는,

나를 가장 미워하면서도

어쩜 나를 가장 애증 하는지 모른다.





인생이 늘 세련되거나 교양 있기 어려운

환경을 빼놓고 보면

내 삶을 사로잡았던 건 한 둘이 아니었다.

역사에 빠지고 세계역사에 심취하고

그림도 재미있어 하고

악기를 주는대로 쉬이 배웠어도

늘 열망은 무모한 바다를 헤엄치고 싶어 하는

우리 집 강아지일지 모른다.

누릴 수 없음은 때론 천방지축이 된다.





우리 집 강아지는 물이 좋아 생후 6개월 때

덥석 한강에 뛰어들어 죽다 살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니 나의 지난 49년 반이란 세월도

개헤엄 치고픈 하룻강아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참 많이 태연해진다.

그렇게 세상 욕심에 미쳐 살진 않았다고.

바보라서가 아니라

늘 돈과 맞바꿔야 할 땐

선택 없이

다 놓아준 적이 더 많았던 건 뭘까?

자신감, 그걸 열정이라 할까!





살면서 만난 수많은 인물들

그 중 자신의 명성을 쫒기 위해

나를 배신하거나 나를 모욕한 사람도 많았지만

이렇게 이 글을 쓸 수 있음은

의리, 그것을 지켰고.





그리고 마지막 하나,

놀고먹어 본 적 없는 형벌 앞에

멋모르고 두 새끼의 어미가 되어

누구에게도 배운 적 없었던 엄마자리,

내 엄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내 새끼 둘 지금껏 홀로 져버리지 않은 건

내 새끼들에 대한 믿음 하나였다.





한 때 몸은 마른 해골보다 흉측했고

마음은 늘 불난 호떡집처럼 분주했으며

무지의 상태로 세상을 살았다.

앎이 없어서

부드러운 것이 강하고

딱딱한 것이 약하다는 걸 몰랐고

손바닥과 손등의 차이를 보지 못했으며

내 삶이 주름지고 쪼그라진 추함처럼

빈곤해서였을까?





욕심을 앞세웠다.

거지근성도 가졌었고 교만도 했다.

신이란 존재를 믿지 못 해 귀신을 믿었던가.

그 수많은 굿을 하며

난 지식을 팔아 밥 빌어먹고 사는

어리석은 젊은이였고

그럼에도 나를

무섭게 혼내거나 꾸짖는 사람은 없었다.

물려받은 게 재물만 없었던 것이 아니었나보다.





그래서 이 글은 근본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를 나누는 게 아니라,

지배와 피지배

결국 가난의 대물림이

아이의 성공과

얽매이지 않을 수 없음을 드러내는

가난의 민낯이며

좁아터진 사고 속에

아등바등 산 내 부모에게서

나 또한

한낱 비좁은 세상을 볼 수밖에 없었음을 전한다.





나의 욕심은

결국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고

나의 거지근성은

단적으로 환경의 대물림이며

나의 교만은

무릇 면목 없는 부류들 속에

배움을 등진 교육받지 못한

무개념에서 온 것인지 모른다.





그 옛날 생존연대를 알 수 없었던 현자들도 글을 익혔는데

나는 왜 교육받지 못했고

아직도 계속 가난해야 할까.

그렇게 억울했던 20대를 지나보니

그렇게 공부가 고팠고,

지식에 굶주렸었음의 궁상은

가난에 순응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걸 깨달았다.

그 때 내 나이 스물하고도 서넛.

벌써 이미 30년 시간이 훌쩍 비켜갔다.





이 글은 천방지축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던

청춘에 대한 회상이다.

실천보다 말이 앞서는 소인배.

이쪽저쪽 눈치 보며

약삭빨라야 했던 밋깔스러움.

늘 내가 먼저였던 이기주의.

나는 세상 도리를 배우지 못해서

참 늦게까지 가난했고

예의도 공손함도 모르고

나보다 약자를 멸시하며

누군가와 다투어 나를 챙겼다.





감히 왜 그랬을까?

간언과 감언을 구별치 못했고

언변이 지식인줄 떠들어 다녔으니,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부끄럽고 부끄럽다.

부끄러울 따름이다.

반 백 살 앞에 서보니 알 것 같다.

썩은 나무로는 나무를 조각할 수 없다고.





이 정도의 세월을 살아보니

통달이란 이런 것이고 경지란 건 이런 것이구나.

겉으로 드러내기 좋아하는 건 알맹이가 없구나.

덕을 쌓지 못하면 재주를 주지 않구나.

게으름은 부를 좀먹어 열정을 얻지 못하며

의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배신 받을 수밖에 없고,

믿음이 소멸되면 섬김을 받지 못하는 구나.

이것이 이치란 거구나.





결국 열정과 의리와 믿음은

내가 누군가에게 가서 희생이 되어야 하는구나.

나를 희생하면 남도 나를 사랑하는 구나.

내가 욕심을 지니면 원한이 생기며,

내가 나를 드러내면 모욕을 받는구나.

내가 남의 불행을 덜어주면 내 고통도 깎이는구나.

내가 잔인하게하면 나 역시 칼에 찔릴 수도 있구나.

이 세상은 그렇게 돌고 도는 구나.

나를 살리는 게 세상이고 사람이듯,

나 역시 세상을 돕고 사람을 돕고,

내 배만 채우면 안 되는 구나.





살아남았다는 건 뭘까?

강해서였을까, 견뎌내어 강해진 걸까?

그럼 어떤 사람이 강한 사람일까?

또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며

나는 신의 선물을 받는 사람일까?

나는 신의 재앙을 받는 사람일까?





이 컬럼, 부동산투자스쿨 컬럼.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혹 세상의 혼란 앞에 흔들림이 있다면

자신을 바로 보십시오.

돈도 성공도 부도 출세도

모두 자기하기 나름이란 걸.





해서 의로운 사람이 되려면

이 전쟁 같은 틈바구니에서도

자신을 다스려 보십시오.

그럼 불이 뜨겁지 않을 수 있고,

자신 스스로의 본성과 본질을 변화시킬 수 있어

자신을 다스릴 수 있게 될 때

인간의 도리를 깨닫게 되지요.





그럼 그때 신은 따라다니며

도움을 줄 테니까요.

자신만의 사상, 자신만의 철학도

모두 말입니다.

그럼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당신 인생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세 가지 단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작가의 이전글 [부동산투자스쿨 비밀] 맹자 어머니, 공자 어머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