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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우 Oct 07. 2022

내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바지가 남고 뜀박질을 할 수 있게 됐다

졸음, 허기, 갈증 그리고 한기


야간에 일을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낮에 일하고 저녁부터 휴식하는 패턴을 몇십 년 해 왔던 나에게는 두 말할 필요도 없었다. 첫 출근을 앞두고 2주 전부터 밤에 일할 수 있도록 낮에 잠을 자고 밤을 새우는 패턴을 몸에 익도록 했는데도 불구하고, 쉬는 시간이면 졸음이 쏟아졌고, 한겨울임에도 땀은 비 오듯 쏟아지면서 갈증도 심했다. 왜 그리 허기는 지는 것인지. 중간중간 허기를 채우기 위해 준비해 간 초코파이를 먹고,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350ml짜리 텀블러를 몇 번이나 채워 마시곤 했다. 해가 뜨기 전 일이 끝나 집에 돌아오면 한기와 허기가 함께 몰려왔다. 차가워진 몸을 달궈 주면서 배를 채울 뭔가가 필요했다. 생각 끝에 사골곰탕 국물에 만두를 넣어 먹거나 전철역 매점에서 어묵을 사 와 데워 먹기도 했다. 살을 뺀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달라짐 1. 뜀박질을 하다.


출퇴근길에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는 단 하나. 왕복 3차선인 좁은 도로였기 때문에 그리 서둘 필요도 없었고, 차가 그다지 잘 지나지 않는 길이어서 건너는 데에는 크게 무리가 없었다. 어느 날 ATM에서 돈을 찾아야 할 일이 있어 출근길을 달리 했는데 ATM에서 인출한 다음 전철역으로 향하던 중 십여 미터 앞에서 횡단보도 파란 불이 들어온 걸 발견했다.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간 여차하면 전철을 놓칠 수가 있어서 뛰었다! (느낌표를 붙일 수밖에 없다) 여느 때 같았으면 천천히 걸어 다음 신호를 기다렸을 나였는데, 급박함 때문이었다. 뛰다니! 뜀박질을 시작하면서 스스로가 놀라고 있었다. 몸이 가벼웠다. 그리 긴 거리는 아니었지만 마치 슬로모션 마냥 느껴졌다. 내가 뛰고 있다! 뱃살이 출렁이는 종종걸음이 아니었다. 몸이 무겁지 않았다.


달라짐 2. 허리띠가 남는다.


물류센터에서는 작업복을 지급하지 않았다. 뭔가를 입긴 해야 했는데 늘어난 뱃살 때문에 옷장의 바지들은 작았다. 오직 입을 수 있는 건 골반에 걸쳐 입는 청바지뿐이었다. 그 바지마저 겨우 숨을 참고 허리를 조여야만 단추를 채울 수 있었다. 억지로 채웠는지 움직이면서 배에 힘을 줬더니 단추가 튕겨 나갔다. 청바지는 허리띠를 맬 이유가 없지만 도망간 단추를 대신할 뭔가가 필요했다. 구멍 없는 스판 벨트로 허리띠를 대신했다. 그 허리띠를 1년여 전쯤 샀던 이유는 점점 굵어져 가는 허리에 맞게끔 구멍과 길이를 조정해야 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전체 길이의 한계에 와 있었다. 첫 출근할 때 청바지에 채워 보니 허리띠 끝을 겨우 채울 만큼의 여유뿐이었다.

시간이 지나 어느 날 바지를 채워 입는데, 허리띠를 채우기 전 손가락 몇 개가 바지 속으로 쑥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어라? 허리띠를 채운 후 겨우 머리만 내밀었던 허리띠 끝이 어느새 새끼손가락 길이만큼 늘어난 여유를 보였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왼쪽은 구글피트니스, 오른쪽은 LG헬스 기록


일을 시작한 지 3주, 지난해 12월의 내 활동 기록이다. 이때에는 샤오미의 미밴드6을 손목에다 끼우고 있었고, LG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던 때이다. (나중에 이것들은 삼성 갤럭시워치4클래식46mm와 갤럭시폰으로 바뀐다, 불의의 사고 때문에) LG헬스 앱은 폰이 움직일 때 기록이 되는 것이고, 구글피트니스 앱은 폰이 움직이거나 미밴드6이 측정한 값을 기록하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LG헬스는 22만3천보를 걸었다고 측정했고, 구글피트니스는 24만4천보를 12월 한 달 동안 걸었다고 측정했다. 구글피트니스의 동그라미 크기는 활동량의 많고 적음을 보여주는데, 큰 동그라미는 3주 동안, 특히 주중에 크게 그려져 있다. 일요일은 동그라미가 거의 없거나 희미하다. 주말에는 거의 초주검이었다. 월요일에 작고 토요일에 동그라미가 큰 이유는 일의 특성 때문이다. 야간작업이기 때문에 월요일 밤 11시에 일이 시작되고, 토요일 오전 8시에 일이 끝나, 일 때문에 움직인 걸음은 화요일부터 토요일에 주로 기록된다.


LG헬스가 보여주는 156.38km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경부선 편도가 400km 정도 되는데, 서울에서 출발하자면 대전보다 훨씬 멀리 걸어 나갈 수 있는 거리다. 22만보를 3주로 나눠보면 (초주검 주말을 넣어보더라도) 하루에 1만 보 이상은 걸었다는 이야기이다. 동그라미가 유독 큰 29일의 경우 180%, 즉 1만8천보를 걸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활동이 내 신체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일을 시작한 지 3주가 지난 몸무게 기록이다. 최초 몸무게를 잰 1달반 전 보다 정확히 4kg이 줄었다. 체지방률은 2.9% 감소. 근육량은 1.5% 증가.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줄었고 얼마가 늘어났는지는 잘 모르겠어서 표를 한번 만들어 봤다.



체중 감소 4kg 중 체지방이 3.8kg이나 줄었다. 신생아를 하나 낳은 것과 다름없다. 주로 복부의 체지방이 빠지기 시작했고, 시작보다 12.9%나 감소했다는 것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체지방과 체지방률이 감소한 반면 근 감소도 있었다. 


이때까지는 근 감소나 체지방 감소에 사실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생존이 급해 허겁지겁 허기와 갈증을 채우기 바빴던 탓이다. 하지만 뜀박질이 시작되고, 허리띠의 여유가 생기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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