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다이어터의 3가지 다짐
뜀박질을 하기 시작했다. 허리띠가 남는다.
기회다!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 3주가 지나면서 몸놀림이 달라지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건강검진 결과 통지서가 집으로 배달된 것도 그쯤이었다. 건강검진 재검을 받으면서 불안했던 것들을 실제 문서로 받아 들고 보니 심란했다. 그러나...
기회다!
굵은 허리, 높은 혈당 수치와 중성지방 수치 그리고 LDL, 상대적으로 낮은 HDL...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이것들이 모두 과다한 몸무게 때문이라는 걸 알아챈 건 금방이었다. 마침 가벼워짐을 느꼈고, 슬림해짐을 느낀 지금, 나는 세 가지 다짐을 했다.
첫 번째 다짐 : 잘 움직이자.
잘 움직인다는 것은 뭘까.
몸무게 조절을 위해 할 수 있는 움직임은 많다.
평범한 걷기부터 달리기, 스쿼트, 레그레이즈 등 혼자 할 수 있는 것들과 헬스, 크로스핏 등과 같이 남의 도움을 받아 함께 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돈을 들여 운동한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다.
지금이 기회이고 생존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에 일단 나는 직장에서 수 백 kg이나 되는 (물론 바퀴가 달려 있지만) 트롤리를 밀고 당기고, 평팔레트에 담겨 오는 택배를 수동 쟈키로 밀고 당기는 일을 하는 충분한 운동 (내지는 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과를 보내면 주중에 일 평균 1만 3천보는 거뜬히 걸으며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은 그걸 금방 알아채고 곧 그 일상에 익숙해져 버린다.
첫 3주간은 처음 해 보는 일 때문에 쉬는 시간엔 늘 쭉 뻗은 채 잠을 자야 했고 조금이라도 트럭이 안 들어오는 시간엔 의자에 몸을 기댔었는데, 잘 움직이겠다 라는 다짐을 한 다음부터는 쉬는 시간에도 잠을 자지 않았고 트럭이 안 들어오는 시간에도 늘 서 있으며 이리저리 걷고 작업장 중간중간에 있는 수평 H빔에 매달리고 수직 H빔을 밀고 당기는 것을 반복했다. 트럭이 들어올라치면 트럭이 문을 열고 도크에 대기 전까지 1~2분 동안 버트킥이나 니킥 동작을 하면서 움직임을 반복했다.
달리 시간 내어 운동하기보다는 업무 중에 할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운동으로 바꾸고자 했던 것이다. 작업장에는 2대의 전동 쟈키도 있었는데, 이건 사람이 타고 팔레트를 기계적으로 들어 움직이는 작은 지게차 같은 것이다. 가끔 휴식시간이 되면 전동 쟈키를 익혀 보았지만, 그리 내 몸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수동 쟈키를 끌고 발 빠르게 움직이며 한 번이라도 더 팔레트를 꺼내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고, 트럭이 들어오면 더 힘을 써서 밀고 당기며 움직였다.
두 번째 다짐 : 잘 자자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쉬었다. 늘 움직이는 평일에 내 몸이 적응하지 않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휴식이 몸에 더 유익하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부터다.
일요일 늦은 오후나 월요일 아침에는 10km 정도를 걸었다. 1km를 10분 내외로 걷는 속보로 걷다 보면 10km 정도는 1시간 40분 안팎으로 걸을 수 있었다. 이건 월요일 야간부터 시작하는 일을 위한 웜업이라고 생각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푹 쉬는 것도 중요했지만, 평일에 잠을 잘 자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야간작업자는 낮에 자야 하기 때문에 해가 떠 있는 동안 숙면을 취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전 11시에는 잠자리에 들고 오후 6시경에 일어나고자 노력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두어 시간을 자고 나면 꼭 깨었다. 서너 시간을 자고 나면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그러다 일어나 시간을 보내다가는 또 일을 나가야 했고, 그것은 피곤함으로 귀결되곤 했다. 그다음부터는 중간에 잠을 깨고 잠이 오지 않더라도 정해진 시각까지는 계속 누워 있었다.
충분하게 자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몸무게를 재어 보면 잠자기 전보다 적게는 2~300g, 많게는 500g 이상 몸무게가 줄어든 것을 확인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자고 먹고 자고 먹고 하면 살찌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겠지만, 충분한 수면 (하루 7시간 정도)은 오히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세 번째 다짐 : 잘 먹자
일반적인 한 마디로서의 '잘 먹자'는 평소에 원하던 음식을 맘껏 먹자라는 뜻일 텐데, 나의 다짐인 '잘 먹자'는 몇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살을 빼더라도 축 처지거나 나이 들어 보이는 게 싫었다는, 살을 뺀 후 다시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혈당/중성지방/LDL 등등의 수치 정상화에 도움이 되겠다는, 그런 이유에서 이다.
그렇게 하려면 제일 먼저 염분/당분이 적어야 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었던 초코파이를 줄였다. 매일 3~4개씩 챙겼던 초코파이는 (진짜 당이 필요할 때 먹는) 비상용으로 1개만 가방에 챙겨 두었다. 대신 허기를 채우는 음식으로는 달걀과 감자 그리고 바나나를 선택했다. 삶은 달걀 서너 개, 삶은 감자 두어 개, 그리고 바나나 몇 개는 항상 내 가방에 들어 있었다.
달걀은 일반적으로 완전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삶은 달걀 먹기는 십여 년 전쯤 시도했었던, 그리고 나름 성공했었던 내 다이어트 방법 중 하나였다. 주요한 단백질원이기도 하고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을 가진, 무엇보다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간편한 음식이 달걀이었다.
삶은 감자는 탄수화물이 가득할 것 같지만 이른바 저항성 전분으로 변해서 쉽게 살로 가지 않을뿐더러 칼륨 비타민C 베타카로틴 같은 유익한 영양소가 많은 음식이고, 역시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간편하면서도 좋은 음식이다.
바나나도 삶은 감자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특히 칼륨이 많아 나트륨 과다일 경우 세포의 삼투압 조절에 용이한 음식이다. 완전히 익기 전의 바나나는 저항성 전분이 많아 쉽게 살로 가지 않고 당 조절에 도움이 된다. 익은 바나나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에도 좋다. 이 역시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간편한 좋은 음식이다.
음식을 요리할 때 소금과 간장을 넣지 않았던 것도 시작했다. 싱거움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요리할 때 토마토와 양파를 넣는 방법을 선택했다.
토마토는 각종 영양소가 든 수퍼푸드 중 하나다. 고기를 구워 먹을 때에도 토마토를 넣어 먹었고, 라면에도 스프를 반으로 줄이고 토마토를 넣기도 했고, 계란말이를 할 때에도 토마토를 넣었다. 이 모든 것은 싱거움을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그게 맛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계란말이에 케첩을 얹어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케첩은 좋은 음식이 아니지만 토마토가 듬뿍 든 음식은 몸에도 좋고 생각보다 싱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양파도 좋은 음식이다. 특유의 향과 코끝을 찌르는 매움이 싱거움을 잊게 한다. 그리고 그 아삭한 식감은 나트륨 듬뿍 든 음식을 충분히 대체하고도 남는다.
염분과 당분 조절만큼 중요한 것은 단백질 공급이다. 살이 빠지면 몸의 지방만 빠지는 게 아니라 근육량도 줄어든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단백질을 먹어줘야 한다. 단백질 하면 닭가슴살을 떠올리겠지만 하나의 음식을 계속 먹는 것만큼 지겨운 일은 없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단백질원을 찾았다. 제일 먼저 먹었던 것이 앞서 말한 달걀이었고, 물론 닭가슴살도 선택지 중 하나였다. 그 외에 돼지고기, 쇠고기, 오리고기, 그리고 생선살도 좋은 선택지였다. 식물성 단백질인 콩, 두부 역시.
돼지고기 중에서는 앞다리살을 선택했다. 앞다리살은 지방이 적고 이른바 가성비 좋은 음식이다. 뒷다리살은 더 저렴하지만 지방이 너무 없어 퍽퍽하고 식감도 덜하다.
쇠고기는 단백질이 가득한 음식 중 하나다. 하지만 쇠고기의 지방은 육고기 중 제일 끔찍하기 때문에 부위를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른바 마블링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지방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지방이 적은 부위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쇠고기의 지방은 맛, 특히 고소함을 담당하는 부분인데, 지방이 적은 부위에 들기름을 찍어 먹는 대안도 있다.
오메가 3 듬뿍인 오리고기도 좋은 단백질원이다. 오리고기의 기름은 몸에 좋다지만 그 역시 기름이다. 적당한 양의 기름만 먹을 필요가 있다.
육고기만큼이나 좋은 단백질원은 생선살이다. 처음엔 냉동 대구살을 선택했다. 대구살을 구워 먹기도 하고, 추운 겨울날 아침에 집에 돌아와 미나리 향 가득한 뜨끈한 대구지리를 해 먹으면 그만큼 행복한 느낌이 따로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잘 먹는 것도 과유불급, 많으면 좋지 않다. 성인의 일일 하루 필요 칼로리는 2000kcal이라고 하는데, 좋은 음식도 하루 소모한 만큼 보다 적게 먹는 것이 중요하다. 염분과 당분은 적게, 단백질 가득, 그리고 적게.
그러나 적게 먹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리고 단백질이 중요하다고 해서 탄수화물을 등한시해서는 안된다.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적게 먹으면 두통이나 피로가 생기고 면역력까지 저하되는 부작용이 생긴다. 필요한 양의 탄수화물은 꼭 먹어야 하며 탄수화물/지방/단백질의 적정한 분포 55%, 25%, 20%는 꼭 지켜주어야 한다.
필자는 하루에 2끼의 식사를 하고, 아침식사를 제일 푸짐하게, 식사 사이에는 바나나/사과/아로니아(또는 블루베리)를 섞어 핸드블렌더로 갈아먹는다. 탄수화물원인 밥은 꼭 챙겨 먹는다. 그것이 잘 먹는 것이다라는 믿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