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가지

오래오래 지켜줄게

by 오늘의 온도




"신장에 심하진 않지만 염증 증세가 있는 걸로 보아 급성 신우신염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갑자기 고열이 나기도 하나요?"



"네,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고열이 나고 등이나 옆구리, 아랫배가 아프기도 해요, 메스꺼움이나 구토증세를 보이기도 하고요, 소변보실 때 불편하지시 않으셨어요?"




그랬다.


열흘 전부터 소변을 볼 때 찌릿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전조증상이었다.

허리가 삐끗한 것처럼 아프기도 했고,

피부통증도 잘 느껴졌다.



나는, 또 이런 증상을 그저 작은 증상이라고 여겼다.

별일 아니라고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늘 이런 식으로 끝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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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수액과 항생제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3일간 항생제와 해열제를 먹으면서도

열은 37.8도 아래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집에 상비해 둔 타이레놀이 있어

추가로 먹었더니 조금 더 나았다.




'제발 주말에만 아프자.'


그렇게 주말 내내 바랐던 소원은 다행히 이루어졌고

무사히 여느 때와 같은 월요일의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화요일 오후 수업을 보강으로 돌리고 찾은 외래진료,

그나마 염증수치가 높지 않아 항생제를 열흘만 더 먹으면 될 것 같다는 진단을 받고 약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이 작은 항생제 알약 하나로 일상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참 허무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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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해지니 다시 긍정의 피가 돌기 시작한다.

참 간사한 사람의 마음, 아니 나의 마음

비록 열이 내리고도 며칠간 반복된 저혈압증세로 식욕과 삶의 질이 떨어지긴 했지만 금세 다시 웃고 떠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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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생'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길러라. 네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에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야. 피로함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네 몸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네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돼."



돌이켜보면

이 드라마를 보았던 20대의 나는 늘 '마음의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견딜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30대 중반에 오니 '마음도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의지가 생긴다'는 말에 동의하게 된다.



더군다나 1형 당뇨로 이미 췌장이 제 기능을 못해 다른 장기에 부담을 주고 있는 나로서는 더욱더 세심하게 몸을 돌봐야 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아프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체력을 잘 관리하고

몸의 변화에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몸에 심한 부담을 주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메마른 가지들에 꽃을 피우진 못하더라고

더 오래 견딜 수 있게

도려내거나 잘라내는 일이 없게 아껴줘야지.

그리고 있는 그대로 더 사랑해 줘야지


오늘의 내가 가장 건강한 나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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