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러운 이별

첫 임신의 종결

by 오늘의 온도




외래진료로 병원에 다녀온 이틀 동안 퉁퉁 부은 눈에서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평소 주사를 맞던 시간에 맞추어 눈이 떠졌다.


이틀 동안의 상심이 컸지만 유산을 체념하기보단 ‘혹시나 심장소리가 커지지 않았을까?’ 기대하며 출근 전 집 근처 산부인과를 찾았다.

오픈시간에 맞추어 왔지만 이미 대기자가 상당해 한 시간을 기다려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아기집에 난황이 있고, 작지만 아기도 보이네요. 그런데 심장이 뛰 긴하는 것 같은데, 소리가 잡힐 정도로 뛰지는 않아요.. 보통 7주 정도 되면 3일 전이랑 비교해서 많이 커져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7-80%는 유산이 될 것 같습니다. 아기집 옆에 피가 흐르는 것도 보여서 하혈이나 복통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이미 3일 전에 결과를 한번 들어서였을까, 그래도 진료실에서 나름 담담하게 나올 수 있었다.

차에서 다시 눈물이 터지긴 했지만 그래도 주말에 많이 울었던 덕분인지 한결 평온했다.




그렇게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화요일에는 남편이 출장에 갔다가 금요일에 돌아오는데 그 사이에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기를 바랐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나의 일터는 평온하게 돌아갔다. 여느 때처럼 청소를 하고 수업을 하며 아이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나누는 별일 없는 일상 속의 나.

그런데 왠지 모르는 공허함이 가슴한구석을 메우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이 없는 3일 동안 일부러 저녁약속을 잡기도 하며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나는 나를 혼자두지 않았다. 그 덕분일까, 시간은 참 빨리 지나갔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 목요일 밤,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고, 하혈이 심해졌다.


‘수요일에는 온몸이 부었는데 이제 배도 아프네.’


남편은 내일 출장에서 돌아오는데, 혼자 있는 밤이 더 두려웠졌다. 처음엔 콕콕 찌르는듯한 아픔이 점점 배를 쥐어짜는듯한 고통으로 바뀌었고 식은땀과 신음소리까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벽 열두 시,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도 두 시간 동안 복통에 시달리다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다행히도 밤사이 통증과 하혈이 조금 줄어들어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점심쯤 다시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타이레놀 두 알을 먹었지만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약이 잘 안 듣는 것인지 힘들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수업을 마쳤다.

출장에 갔던 남편이 돌아온 날이라 오늘 저녁은 그래도 마음의 불안이 덜어졌다.



남편이 돌아와서 마음이 편해서였을까,

평일의 긴장감이 끝나서였을까,

저녁을 먹고, 씻고 나니 갑자기 어제보다 심한 복통이 밀려왔다. 타이레놀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겨우 새벽 1시가 넘어 잠이 들었는데 새벽 3시, 다시 시작된 복통에 눈이 떠졌다.


‘119를 불러야 할까, 내일 오전에 어차피 외래진료를 가야 하는데 좀 참아 볼까..’


고민하는데 곤히 자는 남편이 미음에 걸려 억지로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을 참다 참다 식은땀이 마르기 전에 결국 잠이 들었다.


하지만 복통은 그렇게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침에 눈이 떠지는 순간부터 심상치 않았고, 강하고 약한 복통의 간격이 짧아졌다.


“빨리 씻고 병원에 가야겠어. 준비하자 여보.”


11시 40분 예약이라 여유가 있었지만 아픔이 계속되어 그냥 빨리 가보기로 했다. 통증이 있었지만 서둘러 준비하자는 마음으로 어영부영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런데 머리를 말리려는 순간 눈앞이 흐릿해지며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통증을 불사하고 타이레놀과 병원에서 준 마지막처방약을 먹었는데 너무 늦었던 걸까. 숨통을 조여 오는 듯한 고통에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여보, 119,, 119 좀 불러줘..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


씻고 나오는 남편이 놀랄 겨를도 없이 바로 구급차를 불렀다. 누워있어도 정신을 잃을듯한 고통에 남편이 입혀주는 옷을 입고 그렇게 채비를 했다.

구급대원들의 부축으로 침대의자에 앉혀 집을 나서는데 자꾸만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이대로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픈 배에 숨을 불어넣으며 입으로 숨을 뱉기를 반복했다. 조금은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30분 거리의 외래진료를 예약했던 난임병원에 도착했다. 난임센터진료실 한켠에서 복부초음파를 보고 바로 진통제 수액을 맞았다.


“지난 차트랑 비교해 보니 아기집이 자연배출 된 것 같아요. 자궁이 깨끗하네요. 피고임도 없고, 아마 자연 배출되면서 자궁수축 때문에 복통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3일 전부터 출혈이 심해졌는데 그때였나 보다.

아기가 내 몸을 빠져나간 게,

그렇게 나의 첫 임신이 7주 5일 차에 끝났다.

구급대까지 부르며 그렇게 소란스럽게 이별을 했다.



또랑이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을까,

덕분에 나는 약도, 소파술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온 이후라 구급대도 부를 수 있었고 무사히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든 게 떠나는 아기의 마지막 선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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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임테기 두줄을 보고 기뻐했던 일주일,

피검사 수치에 마음 졸였지만 설레었던 일주일,

아기집과 난황을 만나고 행복했던 일주일

남편과 나의 사랑의 결실이 주는, 부모가 된다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꽉 찬 행복이 벅찬 감정을 휘감았다.


그리고 모두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내 품 안에 있던 작은 생명을 지키지 못한 게 내 탓인 것만 같아 힘들고 괴로웠던 일주일,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상실감과 슬픔이 나를 삼켰다.


힘들거나 좋지 않았던 기억은 더 빨리 잊거나 미화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기억은 빨리 잊거나 지우고 싶지 않았다. 처음 느낀 새롭고 감사한 설렘과 또 그에 따른 더 큰 상실감이 나를 더 좋은 부모로, 좋은 어른으로 이끌어 줄거라 믿는다.


다음 임신이 있을 수도 다시는 없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시험관을 하는 반년의 시간은 내 삶의 시야가 조금 더 넓고 깊어지고 우리 부부가 더 단단해질 수 있었던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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