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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Dec 11. 2021

이야기의 이상한 힘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리뷰


저자 전하영, 김멜라, 김지연, 김혜진, 박서련, 서이제, 한정현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21.04.07

페이지 412


소설 같은 이야기 장르를 계속 읽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뭘까? 단연 '뒷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다. 구태여 <아라비안 나이트>까지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서사 장르는 이야기의 다음을 알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에서 기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속 작품 대부분이 읽으면서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 독서를 멈출 수 없는 유형이어서 즐거웠다.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의 '장 피에르'는 예술 계열 전공자로서 자주 접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기성 권력에 대항하며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이기도 하는 예술가 캐릭터를 앞세워 젊은 여성들에게 찝쩍대는 부류들 말이다. 예술에서 삶의 착취는 불가피하다는 낭만적 신화를 내세우면서 결국 그들이 착취하는 건 자기의 삶이 아니라 다른 이의 삶이다. 그 기만성을 알아채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미묘하고 알아채기 어려운 기만자 캐릭터를 어이없을 정도로 리얼하게 그린 소설이었다.


<나뭇잎이 마르고>의 중심인물 '체'의 캐릭터성이 인상적이었다. 여성, 장애인, 성적 소수자라는 중첩된 마이너리티성을 가진 인물이다. 소수자 캐릭터 묘사에서 자주 보이는 고난 서사로 흘러가지 않는 점도 관성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인 <사랑하는 일>은 심플하게 재미있었다. 마치 코드 맞는 사람들의 티키타카를 엿듣는 기분이 들었다.


<목화맨션>은 세입자와 집주인으로 만난 두 사람의 가까운 듯 먼 듯한 관계를 그린 소설이다. 친구는 아니지만 더 내밀한 사정을 알게 되는 신기한 관계성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적당한 거리감의 우호적 관계가 꽤나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부동산 계약서로 시작한 관계라고 해도, 계약이 끝난 후에는 다시는 이어지지 않을 관계라 해도.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은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게임을 못한다고 왕따가 될 조짐이 보이는 초등학생 아이를 위해 게임을 직접 배우는 엄마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정말 궁금했다. 게임에 대해서 잘 몰랐던지라 소설 속 게임 플레이 중 겪는 에피소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흔한 여자 이름인 혜지를 '김여사'와 같은 성차별적 멸시의 의미로 쓴다거나 '엄마'라는 단어가 하도 욕으로 쓰여서 블라인드 처리가 되는 부분은 현 세태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흥미로운 소재 및 전개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결말의 대비가 절묘하다. 작가노트의 제목이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공략집>인 것도 센스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독립영화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던 <0%를 향하여>, "낙관하자"는 메시지가 강렬했던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도 작가들의 개성이 반짝였다.


젠더 권력 문제나 퀴어 관련 화두가 두드러졌다는 점에서는 전년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과 이어지는 경향성을 보였다. 특히 지금까지 퀴어 코드가 남성 동성애 위주로 그려졌다면 레즈비언이나 사회적 성별 정체성과 육체적 성별이 불일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만날 수 있었던 점도 유의미한 변화였다. 더 소수자이거나 더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시도들은 우선 환영하고 싶다. (물론 유행이나 패션처럼 소재적으로 소모하려는 의도가 강한 글들은 논외로 한다.) 이야기에는 이상한 힘이 있어서, 작은 데시벨의 소리를 포착해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고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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