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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Dec 19. 2021

남기고 싶은 한 문장

《글의 품격》 리뷰


글의 품격

저자 이기주

출판사 황소북스

출간일 2019.05.29

페이지 252


몇 년 전 이 저자의 대표작 《언어의 온도》를 읽고 나서 내 기호에는 맞지 않았기에 다시 이 저자의 책을 만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선물로 이 책을 받기 전까지는. 다른 문학 장르도 마찬가지겠지만 그중에서도 에세이는 글쓴이와 주파수가 얼마나 잘 맞는가가 엄청나게 중요하다. 아무래도 작가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가 조금 더 직접적으로 담겨 있는 장르인만큼 글쓴이와의 상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미 '내 취향 아님'으로 분류해놓은 저자의 책을 읽는 것은 일종의 결심(?)이 필요했다. 어쨌든 올해 안으로는 완독해야겠다는 의무감 반, 궁금함 반으로 책을 폈다.


《글의 품격》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조언을 말랑말랑하게 엮은 책이다. 사실 글쓰기를 다룬 책을 여러 권 읽은 나같은 사람에겐 전혀 새롭지 않은 내용이었다.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엮은 책을 처음 읽거나 말랑말랑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할 것 같았다. 놀랍게도 저자는 언론사 기자 출신이라고 한다. 예쁘고 말랑말랑한 감촉의 단어를 골라쓰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상상하지 못했던 이력이었다. 알고 나니 확실히 레퍼런스를 인용하는 방식이나 한자어 사용 빈도나 방식이 신문 기사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전체적인 감상은 역시 이 저자는 나와 파장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문 제목이 '삶에서 글이 태어나고 글은 삶을 어루만진다'다. 무슨 뜻인지는 너무나 잘 알겠고, 맞는 말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에 와닿지가 않는다. 마치 하나도 진심으로 다가오지 않는 명언을 보는 구태의연한 느낌이 들어서 역시 앞으로도 이 저자의 책을 자발적으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다. 굉장히 혹평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예전에는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꽉꽉 알찬 내용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몇 년 전부터는 책 한 권을 읽고서 한 문장만이라도 건질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독서 가치가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이 책에서도 그런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

작가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글을 쓰는 시간'이 아니라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와닿는 말이었다. 물론 '글을 쓰는 시간' 없으면 작가라는 정체성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문장은 이미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일 것을 전제로 한다. 글의 주제는 영원사람과 삶과 사회다. 우리는 '글을 쓰지 않는 시간' 사람과 삶과 사회를 직접 겪는다. 그래서 사실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은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이다. 작가의 마음과 눈으로 삶을 살아가는 시간이 없이는 글도 나오기가 힘들테니까. 글을 쓰지 않는 시간―삶을 살아가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문장만은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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