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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Jan 02. 2022

아문 상처를 쓰다듬을 때의 환상통

《내게 무해한 사람》 리뷰


내게 무해한 사람 

저자 최은영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19.06.20

페이지 296


《내게 무해한 사람》에 실린 소설들은 대부분 회상의 형식을 띠고 있다. MSN이 네이트온으로 바뀌고, 천리안이 싸이월드로 바뀌던 시대를 공감하는 사람으로서 현재 내 나이대가 바라보는 각자의 십대와 이십대에 대한 회고 같은 단편들이 많았다. 지난날의 일기장을 들춰봤을 때의 부끄럽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감성이 담겨 있다. 언젠가부터 돌아보지 않게 된 과거와 구체적인 서사가 같지는 않지만 시대상이나 감성이 비슷해서 같이 향수가 느껴지기도 했고 과거 속 산재한 상처에 서글퍼지기도 했다.

대부분이 두 사람이나 세 사람 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 또한 특징이다. 단순히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중심인물로 등장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 사이의 관계의 미묘한 움직임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의미다.


상처의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은 서로의 상처를 목격한다. 때로는 목격자에만 그치지 않고 서로가 상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서로 상처를 주려는 악의가 없어도 상황이 그렇게 몰고갈 때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상처는 무뎌져서 아물기도 하고, 새로운 상처를 신경쓰느라 잊혀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하게 아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처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순히 뇌에서 기억하느냐 여부보다는 더욱 포괄적인 개념의 기억이다. 오래된 일이라 뇌가 상처받았던 일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상처받았던 마음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게 무해한 사람》은 마치 그 상처받았던 마음의 기억을 꺼내는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흉터도 희미해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문 상처지만, 마음이 기억하는 상처를 들춰내는. 이미 흉터도 희미해져서 아플 리 없는 아문 상처의 자리를 쓰다듬었을 때 미세하게 느껴지는 환상통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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