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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Jan 08. 2022

세상은 내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모른다

《팩트풀니스》 리뷰


팩트풀니스 

저자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역자 이창신

출판사 김영사

출간일 2019.03.08

페이지 474


얼마 전 유엔무역개발회의가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했다. 기구 설립 이래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된 국가는 한국이 처음이다.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이제까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고도 성장 이후 태어난 세대인 나로서는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생활수준을 고려했을 때 개발도상국으로 보기엔 위화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팩트풀니스》의 1장 '간극본능'을 읽으면서 이 위화감의 정체가 명확해졌다. 1965년경에는 세계를 두 분류로 나누는 방식이 유효했다. 데이터를 보았을 때 두 집단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었다. 하지만 5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의 상황은 달라졌다. 두 집단간 뚜렷한 간극은 없어졌고 75%에 이르는 대다수 사람이 중간 소득 국가에 산다. 세상을 두 분류로 나누는 프레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이라는 프레임에 익숙하기 때문에 위화감이 생긴다. '간극본능'에서는 세상이 변화했기 때문에 분류 방법도 그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네 단계 분류법을 제시한다.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주 저자인 한스 로슬링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최고의 통계(The best stats you've ever seen)>라는 테드 강연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2006년 강연임을 감안하면 매우 파격적인 내용이다. 지금이야 '선진국'이라 불리던 나라들의 저성장 추세와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던 여러 국가들의 소득 수준 상승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만, 2006년에는 비서양 국가들과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가난한 나라'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는 점점 나빠지고 있는가 아니면 좋아지고 있는가.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질문이라서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가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것이다. 데이터에 의하면 다수가 세계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극빈층과 기대 수명 등의 긍정적인 통계를 보여주며 '필요이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벗어나기를 제안했다. 물론 부의 양극화, 세계 곳곳의 독재 체제, 환경 오염 등 부정적인 통계도 분명 많을 것이다. 부정적인 전망을 이끌어내는 요소들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긍정적인 통계 또한 중요한 지표임엔 틀림없으므로 판단의 근거에 포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상황이 좋아진다는 변화의 방향과 현재의 수준에 대한 평가를 구별해야 한다는 부분에 격하게 공감했다. 예를 들어 동물권이 '좋아지고 있다'와 '좋은 상태다'는 완전히 다른 뜻인데 간혹 이를 혼동하기도 한다. 지금 세계 동물권 자체는 썩 좋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물권에 대한 의식 수준은 점점 높아지고 있고 관련 단체의 활동도 늘어나 동물권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물론 부정적인 통계를 바탕으로 한 반대 의견도 있을 수 있다). 현 시점에서의 변화 방향을 판단할 뿐 앞으로 '좋아지는' 추세 자체가 계속될지 아닐지에 대한 전망을 포함하지 않는데, 우리는 간혹 이 경계들을 혼동한다.


우리는 상황이 점점 좋아진다는 말을 들으면 '걱정 마, 안심해'라거나 '신경 안 써도 돼'라는 뜻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가 상황이 점점 좋아진다고 말할 때는 결코 그런 뜻이 아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를 외면하자는 듯이 아니라, 상황이 나쁠 수도 있고 동시에 좋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아지지만 나쁘다 현 수준(예: 나쁘다)과 변화의 방향(예: 좋아진다)을 구별하는 연습을 하라. 상황은 나아지는 동시에 나쁠 수도 있다는 확신을 가져라.


《팩트풀니스》의 부제는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다. 책 자체의 구성도 우리의 어떤 본능들이 세상을 오해하게 만드는지를 10개 장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의 내용이 모두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세계를 분류하는 방법을 이분법에서 4단계로 바꾸는 것과 세계의 추세를 판단할 때 지나치게 부정적인 인식을 경계할 것, 이 두 가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추세선이 지금까지 직선이었다고 계속 직선이라고 단정하지 말라거나 숫자 데이터를 대할 때 상대적인 수치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 등 사람들이 데이터를 대할 때 쉽게 빠지는 오류를 진단한 점도 매우 명쾌했다. 지식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단일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비난 대상을 찾지 말고 원인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명료하고 공감이 갔다.


어쩌면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세상은 생각보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이유를 분석적으로 설명하면서 말이다. 이 메시지에 동의하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저자의 주장과 근거를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내용 자체가 유익했다. 결국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었을 때 세상은 내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저자의 메시지는 잘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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