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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Jan 23. 2022

60년 전에 쓰여진 예언서

《1984》 리뷰


1984 

저자 조지 오웰

역자 정희성

출판사 민음사

출간일 2003.06.16

페이지 444


언제부턴가 '빅브라더'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코로나 확산으로 개인의 동선 파악을 위해 여러 기술을 활용하면서 '빅브라더'는 더욱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방역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GPS, 신용카드 사용 정보, CCTV 등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안면인식 인공지능과 드론을 도입하면서 빅브라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빅브라더를 경계하면서 자주 언급되는 소설이 바로 조지 오웰의 《1984》다. 워낙 평이 좋아서 예전부터 궁금한 책이기도 해서 선택했다.


소설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주인공 윈스턴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시스템에 본격적으로 의문을 품는 모습을 그렸다. 2부는 줄리아라는 인물과 당의 감시를 피해 만나면서 체제에 맞서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내용이 서사상 주를 이룬다. 3부는 당에서 허용하지 않는 줄리아와의 관계가 발각되고 나서의 이야기다.


책의 감상을 한 마디로 하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소름끼쳤다. 이렇게 리얼한 소설이 약 60년 전에 쓰여졌다니, 믿을 수가 없다. 지금을 살아본 작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쓴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지금 이 시대에 상상할 법한 세계가 그려져 있다. 아무리 작가라는 존재가 앞을 내다보는 예언가와 비슷하다 해도, 이토록 리얼하게 상상할 수가 있단 말인가?


소설에 등장하는 텔레스코프는 소리와 행동을 감지한다. 언제 감시당하는지 알 수 없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도청에 쓰이는 녹음 장비나 CCTV나 블랙박스와 같은 녹화 장비가 전혀 낯설지 않다. 그뿐인가, 구성원간 증오 감정을 부추기는 정치 세력들, 과거와 현재를 날조하기 위한 언론 통제, 불평등 구조의 지속을 위한 전쟁 상태 유지 등 소설 속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부조리는 지금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가. 마치 예언가의 엄청난 예언이 적중했을 때처럼 소름이 돋았다.


소설의 거시적 담론―빅브라더를 내세운 권력 영속을 위한 체제의 사회상―자체부터가 이미 소름돋지만, 미시적인 서사들도 만만치 않다. 주인공 윈스턴이 체제의 부조리함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정작 빅브라더 체제 유지를 돕는 데 일조―기록국에서 역사적 진실 왜곡을 위한 기록 날조―하는 부분이나, 사상에 관련한 말 자체를 없애 생각의 폭을 좁히려는 신어 사전 개정 작업 부분이 소름돋았다. 심지어 소설의 부록으로 신어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는 '신어의 원리'가 실려 있다. 


특히 반당 세력(이라고 세간에 알려진) 형제단이 보는 책에 적힌 부조리함의 본질이 적나라하고 통찰이 날카로워서 놀랐는데, 후반부에 오브라이언의 정체가 밝혀진 후 책에 대해 묻는 윈스턴에게 "내가 그걸 썼네. 정확히 말하자면 그걸 저술하는 데 관여했다고 해야겠군. 자네도 알겠지만, 어떤 책이든 개인적으로는 발간할 수 없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충격을 받았다. 반체제 사상의 책을 오브라이언이 썼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오브라이언이 실은 골드스타인이고 체제 전복을 위해 그 책을 썼으나 결국 당에 잡혀 사상 개조(?)를 당해서 다시 당에 충성하는 지도부가 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혹은 애초에 골드스타인은 당이 통제의 용이성을 위해 만든 가상의 반역 세력이며 당의 충성자인 오브라이언이 계획적으로 그 책을 기획하고 저술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전자든 후자든 지독하게 무서운 서사가 아닐 수 없다.


오브라이언이 사상 개조를 당한 골드스타인이라면, 결국 체제의 부조리를 꿰뚫고 바꾸고자 행동하는 사람을 색출하고 고문하는 자가 한때는 같은 행동을 했던 사람이라는 것 아닌가. 다름아닌 부조리한 체제를 바꾸기 위해 행동한 사람을 그 시스템을 유지시키기 위한 고문 담당자로 쓴다는 건 정신을 두 번 죽여서 확인 사살하고야 말겠다는 잔인함의 극치 아닌가. 오브라이언이 가상 반역 세력을 만들기 위해 책을 기획한 거라면, 통제를 위해 가상 반역 세력까지 만들어서 관리하는 치밀함이 소름끼친다. 어차피 고문해서 개조할 거면서 굳이굳이 부조리의 본질을 친절하게 서술한 책을 읽게 한다니, 다 알게 해놓고 철저하게 굴복시키겠다는 말살 전략의 악랄함과 잔인함에 진저리가 났다.


이 진저리의 기억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의 눈을 피해 노트에 기록을 했던 소설 속 윈스턴처럼, 60년 전에 이 작품을 썼던 조지 오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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