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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Jan 31. 2022

유전자에 새겨진 듯한 생의 슬픔

《밝은 밤》 리뷰


밝은 밤

저자 최은영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21.07.27

페이지 344


아주 드문 일이지만 읽는 내내 눈물이 나는 책이 있다. 《밝은 밤》이 내겐 그랬다. 화자인 지연의 증조모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내내 눈물이 나서 독서를 이어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무엇이 그렇게 슬펐냐고 묻는다면 말문이 막힐 듯하다. 슬픔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켜켜이 쌓인 아픔이 느껴졌다. 단순히 지금 느껴지는 고통이 아니라 유전자 차원으로 대를 이어 내려온 생의 슬픔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증조할머니, 할머니, 어머니, 나(지연)에 걸친 이야기로,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교차해 보여주는 형식이다. 일제강점기에 백정의 딸로 태어나 차별을 받던 증조할머니는 식민지라는 상황 속에서 신변 위협을 가장 먼저 받을 수밖에 없는 최약자였다. 군인들에게 잡혀갈까 두려워 잘 알지도 못하는 증조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결혼했다. 증조부는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할머니를 평생 인정하지 않았다. 상대가 중혼인 것을 알면서도 염가에 처분해버리듯이 딸의 결혼을 진행시켰다. 할머니가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와의 결혼을 받아들인 건 증조부에게 당해온 가스라이팅과 평범한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맞서다 두 대, 세 대 맞을 거, 이기지도 못할 거, 그냥 한 대 맞고 끝내면 되는 거'라며 포기를 당연시하며 살았던 어머니.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굴욕적인 타협을 연민하면서도 경멸했던 나에 이르기까지, 사대에 걸친 서사는 많이도 마음 아팠다.


자신이 바람을 피운 탓이 부인에게 있다며 진실한 사과도 하지 않는 남편, 딸보다 바람을 핀 사위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아버지, 당사자에게는 알리지도 않은 채 중혼을 해놓고 원래 부인이 나타나자 그 사실조차 자기 입으로 전하지 않고 원래 부인에게 말하도록 시켰던 할아버지, 아들이 아닌 딸은 처분해야 하는 존재처럼 여기며 가스라이팅하는 증조할아버지. 이 인간 군상들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정작 임신한 부인이 벌어온 돈을 착취하며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사람들과 모여 정치와 노동자의 권리를 운운하던 부분에서는 분노가 치밀었다.


패배감에 젖은 그 말들. 어차피 맞서 싸워봤자 승산도 없을 거라고 미리 접어버리는 마음. 나는 그런 마음을 얼마나 경멸했었나. 그런 마음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발버둥쳐야 했었나. 그런 생각을 강요하는 엄마가 나는 미웠다. 그런 식의 굴욕적인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저항했다. 하지만 왜 분노의 방향은 늘 엄마를 향해 있었을까. 엄마가 그런 굴종을 선택하도록 만든 사람들에게로는 왜 향하지 않았을까. 내가 엄마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나는 정말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의 자리에 나를 놓아봤고 그 질문에 분명히 대답할 수 없었다.

어머니와 딸이라는 어렵고 복잡한 관계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그렸다. 엄마를 경멸하면서도 연민하는 딸의 모순적인 감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서 울컥했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어머니보다 교류도 별로 없었던 할머니를 더 편하게 여겼던 것도 복잡한 감정이 어느 정도 희석된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너무 많은 시간과 감정을 공유한 친구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편하게 다가올 때가 있듯이 말이다.


이야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다른 인물은 새비 아주머니다. 백정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던 증조모에게 따뜻하게 대해 준 사람이다. 증조모와 새비 아주머니, 그러니까 삼천이와 새비가 가까이 살던 시절이 그나마 이 책에서 숨통이 트이는 힐링 파트였다. 하지만 현실 속 풍파와 가부장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그들은 떨어지게 된다. 증조모 외에도 그의 딸, 손녀, 증손녀에게도 새비와 같은 이해자가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할머니에게는 희자가, 어머니에게는 명희 언니가, 나에게는 지우가 '내 편이 되어주는' 이해자로 그려진다. 여러 시대를 거쳐 내려 온 여성으로서의 삶이 갖는 피로함과 고통을 이해하는 것도 결국 여성이기 때문일까. 특히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사이의 연대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은영 작가의 전작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고 마치 아문 상처의 자리를 쓰다듬었을 때 미세하게 느껴지는 환상통 같았다는 감상을 적은 적이 있다. 《밝은 밤》은 더욱 오래되고 깊은 상처, 거의 유전자에 새겨진 상처에서 느껴지는 통증 같았다. 최은영의 소설을 읽다 보면 살아가는 것이 슬픔과 슬픔이 맞부딪히는 일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신기하게도 냉소적이기보다는 따뜻함이 느껴지는데, 《쇼코의 미소》의 해설에서 작품의 세계관을 '순하고 맑은 정감의 나라'라고 표현했던 것이 떠올랐다. 최은영 작가 특유의 순하고 맑은 공감의 정서는 내 파장과 너무나도 잘 맞는다. 읽는 내내 그리도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건 그래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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