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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Nov 14. 2021

어쩌면 따뜻한 팩폭

《살고 싶다는 농담》 리뷰


살고 싶다는 농담 

저자 허지웅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출간일 2020.08.12

페이지 276


고백하자면 나는 허지웅과 하상욱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둘 다 글쓰는 유명인인 데다가 이름의 자음들이 비슷해서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한 명이 영화평론가, 다른 한 명이 SNS 시인이라는 것은 아는데 매치를 할 수가 없었다. 허지웅의 암 완치 소식에 안도했던 기억은 있지만 사실 그가 영화평론가인지 시인인지 정확하게 인지하진 못했다.


급기야 누구인지 모르는 채로 이 책을 골랐다. 투병 생활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직접 투병 생활을 한 적은 없지만 간병을 하면서 병원 생활을 오래 했던 경험으로 미루어 보자면 그렇다. 간병 생활을 해도 사람이 변하는데 투병 당사자는 오죽할까. 글쓰던 사람이 투병의 시간을 거치고 나서 쓴 책이라는 점이 선정 이유였다.


글쓰는 사람이 쓴 글 답게 투병 당시의 상황이 리얼하게 그려져 있다. '리얼'하다는 건 육체적 고통의 경험을 충실하게 나열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장 실감이 나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죽을 결심으로 먹었던 약을 토한 뒤 넘어졌던 욕실 바닥의 감각을 표현한 '천장과 바닥'이었다. 고통 속에서 얼굴이 화장실 바닥 위에 닿아본 이만이 아는 감각이 실감나게 전해졌다. 마음이 아팠다. 그날 밤의 천장과 바닥을 겪은 사람이 말하는 '살라'는 메시지는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의 고통에 관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기만이다. 고통이란 계량화되지 않고 비교할 수 없으며 천 명에게 천 가지의 천장과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죽지 못해 관성과 비탄으로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이다.

꽤 오래전부터 '죽기가 무서워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는 존재가 사고나 병 없이 죽기 위해서는 스스로 '죽기'라는 행위를 해야 한다. '죽기'를 실행할 용기가 없어서 살고 있다는 감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왕 산다면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가진 적도 있었다. 포부가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절망하기도 했다. 나 자신의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데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어떻게 만드냐는 조소 섞인 좌절감에 고통스러웠다. '살기'를 자유 의지로 선택해서 살아온 게 아니었다는 걸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관성이 아니라 내 의지로 살기를 선택하라는 메시지, 아주 잘 전해졌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 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

과거는 바꿀 수 없다. (과거에 대한 해석은 바뀔 수도 있겠지만) 과거는 달라지지 않는데 현재 불행한 이유로 과거 탓을 하기 쉽다. 바꿀 수 없는 환경을 탓하는 일도 허다하다. 왜 나는 건물주의 자식이 아닌가 같은 생각은 안 해본 사람이 드물 듯하다. 과거의 선택이나 가정 환경 같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곱씹는 건 해가 되면 되었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더욱 집중하는 쪽으로 관점을 옮겼다. 지금 나에게는 바꿀 수 있는 것 중에서 바꿔야 할 것을 고르는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했었기에 이 기도문이 더욱 와닿았다.


한국만큼 청년의 치기 어림이 쉽게 공격당하는 나라는 없다. 한국만큼 청년의 시행착오가 용서받지 못하는 나라는 없다. 한국만큼 청년이라는 말이 염가로 거래되는 나라는 없다. 밥벌이를 하며 살아남아 세상을 바꿀 주체가 되려면 끝까지 버텨야 한다. 그러니까 가면을 써라.

청년들이 자신처럼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조언이 매우 뼈를 때리는데 따뜻함이 느껴졌다. 청년 나이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입장에서 봤을 때 (동의 여부를 떠나) 매우 현실적이고 진정성 있는 조언이었다. '가면을 벗어야 하냐는 질문' 부분은 지금을 사는 청년들에게 추천한다.


삶과 죽음, 병, 불행 같은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한 권이지만 현학적이거나 신파적이지 않았다. 인간―특히 청년들―에 대한 연민을 바탕으로 한 신랄한 내용이라 '따뜻한 팩폭'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나 또한 '솔직히 사는 게 지긋지긋'한 사람이지만 이 지긋지긋함의 유대감이 때로는 힘이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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