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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Nov 20. 2021

묵직한 먹먹함이라는 부력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리뷰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저자 이승우, 박형서, 윤성희, 장은진, 천운영, 한지수

출판사 문학사상

출간일 2021.01.18

페이지 368


2020, 이상문학상 수상자인 김금희 작가가 수상을 거부했다. 몇몇 다른 작가들도 수상 거부에 동참했다. 주최 측인 문학사상사는 수상자 발표를 무기한 연기했고, 결국 2020 수상자 발표는 무산된 채로 2021년을 맞았다.  사건을 표면적으로나마 알고 있던 터라 2021 수상자가 누구일지 관심이  수밖에 없었다. 수상자는 이승우 소설가였고, 토를 달기 힘든 인선이라고 생각했다. 오해를 부르기 전에 첨언하자면, 그만큼  기준에서 이승우 소설가는 작품에 있어서 신뢰가 가는 작가이기 때문에  논란 이후에 선정하기에 안정적이었으리라는 의미다. 수상작도 자선 대표작도 인상적이고 여운이 컸다.

<마음의 부력> 어머니에게 편애를 받은 '' 형의 죽음 이후로 달라진 어머니의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원인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결국 어머니의 그런 행동의 원인은 형에게  애정을 쏟지 못한 죄책감에서 비롯했음을 알게 되고 죄책감을 덜기 위한 연기를 자처하며 끝이 난다.
 소설의 백미라   있는 부분은 어머니가 형과 자신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단박에 드러내는 장면이다. 화자와 형은 전화 목소리가 비슷해서 어머니조차 그들의 목소리를 헷갈려했다. 하지만 형의 목소리를 화자의 목소리로 착각했고, 화자의 목소리를 형의 목소리로 착각한 적은 없다. 대수롭지 않은 듯한  차이는 사실 소설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아들들에 대한 인식 차이를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소설에서는 매화꽃과 살구꽃에 비유한다. , 매화꽃이  흔하거나 보편적이거나 대표적이거나 친근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통 매화꽃을 살구꽃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개 살구꽃은  꽃이 거기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 '그러다 보니 살구꽃은 살구꽃으로 바로 인식되지 않고, 모양이 닮은 어떤 ,  대표적이고  흔하고  친근한, 예컨대 매화꽃으로 오인될  '.  설명으로 미묘하고 은밀할 수도 있는 부모의 편애―혹은 자식에 대한 친근함의 차이―를 드러냈다.
부모의 애정을  형제자매간 쟁탈전은 익히 알려져 있는 개념이다. 이는 비단 가족 내에서만 적용되는 이슈가 아니다. 근원적으로 인간의 애정의 정도는 동일할 수가 없으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다. '슬프게도 인간의 사랑은 편애다'라는 전경린 소설가의 심사평의  구절은 소설의 제목인 '마음의 부력'과도 맞닿아 있다.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한 자연의 섭리, '부력' 마음에 작용한다는 것이니까.
'편애받는' 입장의 마음 또한 그리 편하진 않다. 사실은 삶에 대한 애정 결여나 태만의 결과로 이른바 출세 가도를 달리는 '' 오히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적극성을 지닌 형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 향한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나 어머니의 편애는 오히려 형에 대한 열등감과 죄책감을  증폭시켰다. 인간의 사랑이 편애일 수밖에 없다면, 그로 인해 받는 상처도 필연적인 것일까. 다소 서글픈 의문을 갖게 만드는 소설이다.

자선 대표작인 <부재 증명> 이승우 작가 특유의 철학적 사유가 펼쳐지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생전 가보지도 않은 지역에서 자신을 봤다는 목격담을 여러 사람에게서 듣는다.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도 사람들은 믿어주질 않고, 목격담이 이어지자 주인공은 직접 확인해보고자  지역으로 향했다가 살인 사건 용의자로 체포당한다. 살인 사건 용의자의 몽타주는 주인공과 너무 닮은 나머지 자신이  사람이 아님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사건 당시  지역에 있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목격담을 전했던 동호회에서 알게  지인,  연인, 친척까지도 진짜 내가 아님을 믿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불리해질 증언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나이고 다른 누구가 아님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소설은 그런 사유를 담았다. 나라면 어떨까. 과연 나와 같은 외모의 사람과 나를 구분짓는 무언가를 증명할  있을까?

<97 세계> 처음에 무슨 SF 소설인  알았다. 박형서의 특기인 '공들여 변죽 울리기' 흥미롭다. 소설은 폭발 현장에서 딸을 구하려고  번이나 시도하는 아버지 이야기를 주축으로 한다.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서부터 3 폭발에 이르까지가 하나의 주기로 반복된다. 자식을 구한 부모만이  주기에서 빠져나갈  있다. 자식이 생존하면 자동적으로  주기에서 빠져나오게 되는지, 아니면 다시 주기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선택하는지 여부는   없다. 일종의 타임루프물이라고   있다. 주인공은 딸을 구하기 위해 온갖 변수들을 계산해 가며 경로를 단축하려고 애쓴다. 그러던   여자 또한 주기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함께 시간을 단축할 방법을 고민한다.
다음 세대, 쉽게는 청년들을 떠올렸다. 아니면 광의적 의미의 연대가  수도 있겠다. 어쨌든  소설에서 아이-부모 관계가 주축인 설정이기 때문에 다음 세대, 혹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상정할  있겠다. 나는  소중한 사람을 아무리 노력해도 구할  없지만 다른 사람은 너무나도 쉽게 구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자의 소중한 사람도 구해진다는 믿음이 없어지면 절망에 빠져 아무것도 행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상당히도 뼈저리게 다가왔다.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고, 그저  주기 내내 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주인공의 딸이 다른 아이들을 구하려고 노력했던 것을 보고 울컥했다. 결국  딸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살아서 주기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주인공이 딸을 구할  있는 확률은 0이므로, 다른  가까이 있던 누군가가 딸을 구해주지 않는  지옥같은 주기를 거듭해야 한다. 연대하려고 애써봤지만  되지도 않고  하나  살기에도 벅차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아무리 애써봤자 실패라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주인공은 딸이 다른 아이를 구하려고 했던 것을 알고 자신이 구할  있는 다른 아이를 구한다. 결국 누군가―그것이 비록 나나 나의 소중한 사람이 아닐지라도―를 구하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 비록 자신은 살아남지 못했지만 결국 다른 누군가를 구해냈다. 상당히 절망적인 희망이다. 주인공은 그래도 지옥은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선 그래도 뭐든 해볼  있잖아요."라면서. 나는 사실 연대하려는 발버둥이 무력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자신의 생존부터가 막막한데 연대가 무슨 소용인가. 세상에는 연대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사회는 모두  살아가는 방향으로 바뀌기가 어렵다. 모든 아이를 구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비록 자신은 언제 구해질지 모르지만 발버둥은 유의미하다는 절망적인 희망을 던지면서 끝난다. 예전부터 치열하게 고민했던 주제를 SF적인 요소로  버무린 아주 인상깊은 작품이었다.

<블랙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커다란 구멍에 대한 이야기다. 어디에서부터 비롯했는지 모를 울분이 터지는 순간이 있다. 심지어  울분과는 상관 없는 사람들에게 터뜨리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음식에 농약을 타서 감옥에  엄마, 후임병을 괴롭혔던 오빠, 지하철역에서 사람을 밀치고 때린 적이 있는 언니, 그밖에도 서사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살아가면서 마음에 생기는 커다란 구멍이라는 중심적 소재는 공감갔지만 결과적으로는 폭력성으로 귀결되는 내용이 대부분이라 매우 뒷맛이 찝찝했다. 소설에서 말하려는  무엇인지는 이해가 가지만, 그보다는 실재하는 폭력적 사건의 정당화가  수도 있을  같다는 우려가  커서 마냥 공감하면서 읽는 수는 없었다.

<나의 루마니아 수업> 사회에 융화하지 못하고 견디기 어려워하는 약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재 자체를 인식조차 하지 못할만큼 덩어리가 되지 못하고 남은 자인 '김은경' 각별하게 생각했던 ''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읽었을 때에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무리에 끼지 못하고 혼자였던 '김은경'만이 덩어리가 되지 못하고 남은 사람일까? 그렇지 않아 보였다. 루마니아 문학 교수가 되고 싶었지만 빚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신경쇠약에 걸린 어머니, 어린  동생을 두었다는 자신의 삶을 깨닫고 꿈과 결별하고 공기업에 입사한 '', 대기업 임원 아버지를  덕에 ''으로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하고 부모의 재력으로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현수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덩어리에 속하지 못하고 남은 존재들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사실은 각각 가루 입자이면서 덩어리진  살아가고 있는  아닐까.

<아버지가 되어주오> 어머니를 희생한 피해자, 아버지를 가해자로 정의했던 화자가 남같지 않았던 소설이다.  또한  소설의 화자처럼 어머니의 삶을  맘대로 해석했고,  해석  어머니의 삶은 행복하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소설을 읽었을  어머니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가 감내해 왔던 희생과 고통, 그리고 아버지의 잘못된 행태들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한 ''에게 엄마가 말하는 장면이 특히 그랬다.

넌 네 엄마 인생이 그렇게 정리되면 좋겠니?
뭐, 뭐가?
네 말대로라면 내 인생 참... ... .
어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슬플 거 같어.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한 충격이었다. 내가 뭘 안다고 엄마의 삶을 맘대로 평가하고 연민을 느껴왔단 말인가. 나는 여전히 나의 엄마, 혹은 이 소설의 엄마처럼 살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의 삶을 맘대로 해석하고 연민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그 사실을 통렬하게 깨달아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야夜심한 연극반>은 소설의 배경이 일본이고 게다가 게이샤나 마이코 문화가 등장하는 것이 이색적이라면 이색적이었지만, 상상하고 몰입하기엔 수월하지 않았다. 통일교, 임신거부증 등의 사연이나 주요 반전도 소재적으로 감당하기가 버거운 감이 있었다.


대부분 '아는 이름'인 중견 작가들의 최근작을 한데 모아 읽어볼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이승우 작가나 박형서 작가는 작품집이 나오면 확인해 보는 편이긴 하지만, 다른 작가들의 작품은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신인 작가 범주에 들어갈 때부터 작품을 읽었던 작가도 몇몇 있어서, 노련해지는 작품 세계를 독자로서 실시간으로 함께하는 것 같아서 즐겁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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