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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Nov 28. 2021

지독한 인간 군상

《눈먼 자들의 도시》 리뷰


눈먼 자들의 도시 

저자 주제 사라마구

역자 정영목

출판사 해냄

출간일 2019.12.11

페이지 476


'이시국'이라서 더 와닿을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코로나19 초반의 혐오(중국 혐오, 동양인 혐오 등) 상황을 보고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었으니 문학 분야를 읽기로 했다. 《페스트》가 이시국 바람을 타고 베스트셀러권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렸다. 《페스트》도 좋지만 예전부터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던 다른 소설이 떠올랐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다. 그렇게 이시국을 핑계(?)로 《눈먼 자들의 도시》를 손에 잡았다.

읽기 전부터 사람들이 모두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내용인 것은 알고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이 퍼진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막연히 재난에 가까운 극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과 비극적 참상을 그린 내용일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지독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읽는동안 심신이 힘들었다. 특히 감정이입을 잘 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은 심신이 건강할 때 읽는 것을 권하고 싶다. 


전염병으로 추정되는 실명 증상이 생기자 정부가 격리 시설을 만들고, 격리된 사람들은 군대에 의해 통제당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상상이 어려웠겠지만 지금은 현실감이 있어서 무서웠다. 지금도 어떤 나라에서는 정도만 다를 뿐이지 공권력이 강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격리 시설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당하는 지경에 이른다. 화장실에 제대로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오물로 더러워진 통로를 지나가야 하는 상황 같은 묘사는 인간으로서 비참했다. 더 비극적인 상황은 역시나 사람에게서 비롯한다. 격리 시설 안에서 지급 식량을 가지고 사람들끼리 갈등을 빚거나 급기야 지급되는 식량을 자체적으로 배분하려는 깡패 세력이 등장했을 때는 끔찍했다. 실명해서 격리 시설에 들어왔으나 그곳에서도 총을 가진 집단으로 인해 권력층이 형성되고 약탈을 행하는 모양새는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금전적 약탈은 물론 성적 착취까지 일삼는 흐름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과연 나는 재난이나 유사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과연 인간의 존엄성을, 도덕성을 지킬 수 있을까. 이틀을, 사흘을 굶어도 그럴 수 있을까. 난 아마도 미쳐버릴 것 같다. 셧다운도 하지 않은 한국에서 여행을 가지 못하거나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는 정도의 제약에도 정신이 지쳐가는 나의 나약함으로는 도저히 자신이 없다. 어떤 상황이 와도 도덕성과 연대 의식을 잊지 않도록 꾸준히 자신을 점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읽으면서 격리 시설의 오물 냄새가 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몰입되는 소설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힘들었다. 이 시국에 이런 책을 읽는 건 더 피부에 와닿는 몰입 경험이긴 하지만, 동시에 매우 괴로운 경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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