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초록 Mar 13. 2022

작가의 오기를 지지합니다

《우리가 쓴 것》 리뷰


우리가 쓴 것 

저자 조남주

출판사 민음사
출간일 2021.06.18

페이지 368


작가 본인은 원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조남주 소설가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려면 《82년생 김지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82년생 김지영》은 문학계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기호가 된 소설이다. 성 차별을 숨쉬듯이 당해와서 그 부당함에 익숙해져 있던 여성들의 공감대를 얻으면서 집단적 자각의 계기가 되었고,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소설의 출간부터 호응과 논쟁까지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들은 한국 성 인식에 대한 갈등의 현 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현 시대 가장 '핫한' 소설가 조남주가 단편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소위 말하는 '김지영 세대'는 경제 고성장을 거쳐 교육 기회를 비교적 평등하게 받기 시작했지만 가부장적인 성 인식과 차별적 사회 구조에서 자란 세대다. 조남주 소설가 본인도 김지영 세대에 가깝기 때문에 가장 본인과 가까운 이야기, 가장 본인이 세상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 가장 치열하게 그려낼 수 있는 이야기였으리라 납득했다. 《우리가 쓴 것》에는 초등학생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소설가의 나이와 함께 소설 속 중심 인물의 연령이 올라가는 건 흔하게 있는 경우지만, 10대 여성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놀랐다.


 특히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의 축소판같은 중학교 교실 속에서 일어난 성희롱을 둘러싼 이야기 <여자아이는 자라서>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지금보다도 훨씬 차별이 심했던 시절 가정 폭력 상담소를 운영했던 엄마를 둔 화자는 중학생 딸 주하가 있다. 엄마의 일을 자랑스러워했고 자기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인식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나고 어느새 '몰래 사진 찍고 낄낄거리는 게 장난'이라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주하에게 지적당한다. "그러니까 엄마, 업데이트 좀 해."라고. 주하의 이 말은 띠지의 메인 카피였는데 이런 흐름에서 나오는 말일지는 몰랐다. '이미 비슷한 일들을 충분히 보고 들었고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고 내 불안과 공포를 부정했'던 화자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의 불합리를 자꾸 모른 척이나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게 되는 나약한 본성을 간파당한 순간 같아서 서글펐다. 예전부터 있어왔던 성 갈등은 이제 표면에서도 첨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런 갈등 상황을 최소한의 사회적 필터링조차 없이 고스란히 맞닥뜨리는 곳 중 하나가 교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각지대가 되기 쉬운 곳까지도 들여다 보려 한 작가의 세심한 작가정신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현남 오빠에게>는 연애 관계에서의 가스라이팅을 어이없을 정도로 리얼하게 그렸다. 이 치가 떨리다 못해 헛웃음이 날 정도로 예리한 현실 관찰력은 조남주 작가의 장점 중 하나다.

 오빠가 지은이에게 "너는 보통 여자애들하고 다른 것 같다."라고 말했고, 지은이가 "그게 무슨 뜻이에요?" 하고 물었습니다. 오빠는 "칭찬이야." 했어요. 지은이는 "보통 여자애들이 어떤데요? 보통 여자애들하고 다르다는 게 왜 칭찬이에요? 그럼 보통 여자애들은 보통 별로라는 뜻이에요?"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매화나무 아래>와 <오로라의 밤>은 고령 여성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현대 우리 시대의 고령 여성은 본인이 나고 자란 가족, 배우자의 가족, 결혼해서 꾸린 가족 등 여러 가족의 교집합 원소인 경우가 많다. 가족이라고 해서 마냥 정답거나 아름다운 관계이지만은 않다. 미움, 동정, 분노, 서운함 등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는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나이들어가는 여성의 모습은 어떤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오기>는 《82년생 김지영》 이후 상징적인 작가가 되면서 겪었을 법한 이야기여서 마음이 아팠다. 작가후기에서 <오기>의 에피소드들이 모두 작가의 경험담은 아니라고 밝혔는데, 거꾸로 말하면 몇 개는 작가의 경험담이라는 말이 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김지영 세대'로서 조남주 작가에게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다. 여성들의 '집단적 자각'을 이끌어내고 성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져 사회 인식을 크게 달라지게 만든 장본인이지만, 그만큼 적의를 가진 집단의 표적이 되기 쉬웠을 테니까. 나를, 우리를 대변해주느라 많은 고통을 받지만 결국 수혜를 받은 약자들은 대변자를 지키지 못한다는 흔하다면 흔한 클리셰가 떠올랐다. 여전히 호의는 적의보다 훨씬 힘이 약하겠지만 조남주 작가를 지지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골적인 풍자 우화가 주는 날카로운 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