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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Mar 27. 2022

부끄러움을 기록하는 부끄러움

《인간실격》 리뷰


인간실격

저자 다자이 오사무

역자 김춘미

출판사 민음사
출간일 2004.05.15

페이지 191


* 본문 내 일본어(단어, 인명 등) 한글 표기는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고 자체적인 방식으로 표기했다.
 
 일본어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다자이 오사무와 나츠메 소세키처럼 고전이라 불리는 작가의 소설을 읽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있었다. 독서 영역을 넓힌다는 측면을 고려해서 일본 고전을 리스트에 넣기도 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도 그중 하나다.
 
《인간실격》의 초반부인 '첫 번째 수기' 부분을 읽고 이 소설의 세계에 단번에 몰입했다.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웠던 주인공 요조의 사고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나 외의 인간의 사고를 이해할 수 없다는 근원적인 차원의 고독감에 진저리가 처질 정도로 공감했다. 요조는 이해받지 못하리라는 고독감과 괴로움의 방어기제로 '익살스러운 인물'을 연기한다. 그 성장과정이 퍽 흥미롭게 전개된다. 

《인간실격》은 불안정하지 않은 자아의 단순성을 경멸하고, 불신하고, 두려워하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나 또한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을 듯한' 대다수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경멸했고 나와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소설의 주인공 요조도 그러한 인물이었기에 초반부는 꽤 몰입해서 읽어나갔다.


 초중반부터 갑작스럽게 동반 자살 시도를 하더니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서 당황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인간실격》을 발표한 시기를 확인했다. 1948년이었다. 패전 이후의 일본 사회에서 소설가로 살아가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예술가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 혼란한 시기였을 것이다. '작품 해설'을 읽고 작가 자신이 실제로 여러 번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작품 외부적인 요인을 알아두는 것이 감상에 더욱 도움이 되는 유형의 소설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전체적으로는 몇몇 일본 문학 특유의 나르시시즘이 보인다는 인상이 컸다. 주인공 요조 자체가 '부유한 가정에서 배고픔을 모르고 태어났지만 속물적인 남들과는 다른 연약한 나'에 도취되어 있는 인물로 보였다. 공부를 안해도 성적이 좋았다거나 잘 생긴 외모여서 인기가 많았다는 묘사에서도 자아도취적인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2병', '흑염룡'과 같은 불안정한 자아인 채로 나이가 들어서 쓴 회고록 같아서 군데군데 오글거리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불안정한 자아의 속내를 써내려간다는 것이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누구보다 오글거림을 느낄 사람은 그 이야기를 쓰는 자신일 테니까. 부끄러움을 기록하는 부끄러움을 견디고 소설을 썼다는 점은 평가할 가치가 있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새로운 독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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