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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Apr 18. 2022

키득키득 웃다가도 찔끔 눈물나게 하는 시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리뷰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저자 권혁웅

출판사 창비
출간일 2013.10.18

페이지 131


《마징가 계보학》을 접한 후로 권혁웅은 나에게 관심 시인이었다. 친숙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키치적인 감수성으로 풀어낸 그의 시가 마음에 들었다. 마치 유머 코드가 맞는 친구의 자조적 독백을 듣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궁상맞고 찌질한 면을 유머러스한 언어 유희와 키치적 소재들로 풀어내는 것이 재미있었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에서도 친숙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은 변함없다. 다만 청년의 장난스러움과 키치적인 감수성이 옅어진 점이 많이 아쉬웠다. 자칫하면 젊은층들이 쓰는 유행어를 무리하게 따라할 때의 어색함이과 머쓱함 비슷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권혁웅의 시는 재미있다. 웃음소리로 친다면 '키득키득'이나 '풉'과 같은 의성어가 어울릴 법한 재치가 있다. 재기발랄함에서 그치지 않는 것 또한 권혁웅 시의 특징이다. 키득키득 웃고 나면 어딘가 평범한 소시민들을 보듬어주는 듯한 아련함과 공감대가 느껴지는데, 이 포인트가 권혁웅 시의 정수다.


책 뒤쪽 해설에서는 시인의 시 세계를 세속의 자리에 있는 시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이 시집에서는 현실 속에서 익숙한 장소가 많이 등장한다. 신의주찹쌀순대, 도봉근린공원, 주부노래교실, 천변체조교실, 금영노래방, 불가마, CGV, 의정부부대찌개, 춘천닭갈비, 고려삼계탕 등이 그 장소들이다. 당연하지만 시에서 그냥 '노래방'과 '금영노래방'은 완전히 다르다. 금영노래방이 주는 현실감과 구체성은 그냥 '노래방'으로는 불가능한 시적 역할을 한다. 권혁웅은 이런 현실감과 구체성을 시의 세계에 끌어오는 데에 아주 능숙한 시인이다.


유머러스함이나 현실감각을 놓치지 않는(세속의 자리를 영리하게 지키는) 강점은 살아 있었지만 전작에 비해서는 아쉬웠다. 앞서 언급했듯이 장난기와 키치적인 감수성이 옅어진 것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군데군데 여성을 타자화하는 듯한 관습적인 구절들도 다소 낡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몇 안되는 관심 시인이라 기대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권혁웅의 다음 시집을 기대한다. 키득키득 웃다가 눈물 찔끔 흘리게 하는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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