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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Apr 24. 2022

9시 17분 출근은 안 되나요?

유연근무제에 대한 단상

친구랑 여행을 갔을 때였다. 다음날 일정을 위해 아침 알람을 설정하는데 10:30, 10:35처럼 5 단위로 알람을 맞추던 나는 친구의 알람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10:19, 10:23처럼 5분이나 10분으로 떨어지지 않는 시각으로 알람을 맞추는  아닌가. 친구는  떨어지는 시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5, 10 단위로 알람을 설정해야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냥 익숙하고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5 10으로 떨어지는 시각으로 알람을 설정해 왔던 나는 아예 다른 발상조차를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나도 모르게 경직된 사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경직된 사고를 다시 돌아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출근 시간에 대한 생각이다. 사회 생활을 꽤 오래 해 오면서 근태는 황금률에 가까운 절대원칙이었다. 지각이 잦으면 일단 회사 생활의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불성실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적인 만남에서도 지각을 질색하는 사람으로서 회사에 근무하면서 교통 사고가 나서 버스가 움직이지 않거나 고장 등으로 지하철이 움직이지 않는 정도의 돌발적인 사고가 아닌 이상 지각은 해본 적이 없다.


이직을 하면서 처음으로 유연근무제를 경험하게 되었다. 유연근무제라 해도 회사마다 시행 방식은 다양하다. 8시~17시에서 10시~19시까지 삼십 분 혹은 한 시간 단위로 선택해 달마다 바꿀 수 있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주 40시간만 채우면 일일 근로 시간이나 출퇴근 시간은 상관이 없는 곳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전자와 비슷한 방식이 많다. 내 경우는 시간을 30분 단위 등으로 고정하지 않고 코어 타임을 포함해서 근무 시간을 맞추면 되는 방식이다. 매일 출근 시간이 달라도 상관 없다. 물론 만약 9시에 회의가 있다면 그 전에는 출근한다. 갑자기 엄청 유연한 근무 제도를 맞닥뜨린 나는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계획형 인간인지라 정해진 시간이 없는 게 불안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한동안 자율적으로 내 출퇴근 시간을 정해서 다녔을 정도다.


몇 달이 지난 지금, 근태를 절대원칙처럼 여겼던 사고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지하철이 곧 도착한다는 표지를 보고 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몇 시까지 출근한다는 기준이 없으니 내가 나온 시간에 자연스럽게 회사에 도착하면 된다. 맞춰야 할 시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였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심지어 팬데믹 시국에도)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어야 하는 삶을 매일 살아야 한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그럼 붐비지 않을 시간을 찾아 넉넉히 나오라고 반박할 수도 있는데, 웬만큼 일찍 나오지 않는 한 붐비는 경로는 계속 붐빈다. 정해진 시간이 없어지니 붐비는 시간대를 피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커피를 사갈 때도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도 조바심이 없어졌다. 그 순간순간의 조바심이 얼마나 내 마음의 여유를 앗아갔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출근이라는 단어에 예전만큼 눈살을 찌푸리지 않게 되었고, 부정적인 에너지 소모가 적어짐으로써 근무 만족도도 높아졌다.


물론 정해진 시간에 업무를 해야만 하는 직종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고객을 응대해야 하거나 협업이 많은 업무를 하는 포지션이라면 불규칙적인 출퇴근 시간으로는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내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요즘 같은 분위기가 되기 전까진 출퇴근 시간을 정하지 않는다는 발상 자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마치 알람을 아무 생각 없이 5분이나 10분 단위로 맞췄던 과거의 나처럼 말이다. 정말 출근 시간을 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가 의문이다. 물론 모두가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는 것이 근태 관리를 하는 입장에서는 편할 것이다. 협업하기에도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각 방식의 기회비용을 고려해서 결정한 것과 다른 방식은 고려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것은 완전 다르다. 그래도 요즘은 노동 환경이 점점 유연해지면서 출퇴근 시간 관련해서도 다양한 방식을 고려하고 도입하는 기업이 생기는 추세다. 고무적인 일이다.


살아가면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원칙들이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실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당연하다'라고 생각하기 전에 '왜 그래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꼭 9시나 9시 30분이어야 하나? 집에서 나오는 대로 9시 17분 출근 같은 건 안 되는 건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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