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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May 08. 2022

애매한 재능, 그 미학

《애매한 재능이 무기가 되는 순간》 리뷰


애매한 재능이 무기가 되는 순간

저자 윤상훈

출판사 와이즈베리

출간일 2021.08.15

페이지 240


세상에는 수많은 책이 있다. 그 무수한 책 중에서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읽을 수 있는 권수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어느 정도 독서 취향이 생기면 작가나 주제를 위주로 책을 찾아간다. 내 경우 분야별 관심작가가 있어서 수시로 그들의 신작을 체크해서 찾아 읽는다. 서점에 가서 신작 평대를 보고 궁금한 책이 있는지 탐색한다. 종종 독서 모임을 통해서나 선물을 받아서 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읽을 책을 만나는 루트는 대략 이렇다. 아주 드물게 예기치 못한 곳에서 책을 만나기도 하는데, 《애매한 재능이 무기가 되는 순간》이 그랬다. 지난한 이직 과정에 지쳐가던 무렵의 면접 날 우연히 가게 된 북카페에서 이 책을 만났다.


북카페에서 평대를 훑던 차에 《애매한 재능이 무기가 되는 순간》이라는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당시 나는 커리어 전환을 겸한 이직을 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나의 역량과 커리어에 대해 고민이 많던 때였다. 다양한 업종 경험을 통해 비즈니스적으로 큰 숲을 볼 줄 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한편 제너럴리스트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분위기에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 때였기에 '애매한 재능'이라는 키워드에 더욱 눈이 갔다. 결국 책 제목에 눈이 가는 건 내 페인포인트나 관심사를 건드리는 키워드가 담겨 있어서다.


책에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애매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말한다. 유튜브가 가장 대표적인 예다. 예전에는 사람들에게 콘텐츠를 제공하는 매체가 한정적이었고 어떤 분야의 권위자만이 노출되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전문가급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자신의 콘텐츠를 알릴 수 있는 시대다. 유튜브 외에도 오디오 형식의 팟캐스트나 글 형식의 브런치 등 여러 형식의 플랫폼이 있다. 책에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각의 (애매한) 재능을 활용하는 방법을 단계적으로 담았다. 전반적으로는 뜬구름 잡는 식의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꽤 현실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만약 만사 제쳐두고 어떤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좋아서 그것을 포기할 수 없거나 탁월한 재능으로 짧은 시간 안에 성공해 생계 비용을 마련할 자신이 있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떠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생계 비용'을 일정 수준으로 안전하게 확보한 후, 가슴 설레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과 '이동의 자유'를 늘려나가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중심축을 먼저 탄탄하게 잡아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오래갈 수 있다.

사무치게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몇 년 전에야 비로소 이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때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중심축을 잡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시도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파트3의 애매한 재능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는 힘 빼기가 필요하다는 내용에도 매우 공감했다.

예술적인 배경이나 커리어가 전혀 없던 내가 갤러리를 대관하고 해외까지 진출해 설치 미술 전시회를 할 수 있었던 이유를 꼽으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대관 가능해요?"라고 물어본 것. 두 번째는 "난 엄청난 작가가 아니다. 완벽하게 하는 게 아니라 완성만 하자."라고 생각하고 그냥 한 것. (중략) 힘을 빼고 찔러보는 것과 열심히 하기보다 대충 하겠다는 마음으로 일단 건드려보는 자세로 임했다.

나는 브런치를 2021년 10월에 시작했다. 막연한 의미가 아니라 실질적인 의미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2020년부터다. 브런치는 작가 신청에서 통과해야 발행할 수 있다 보니 어느 정도 기획안이 잡힌 아이템을 가지고 신청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티스토리에 비공개로 포스팅을 해 보고 지속성이 있으면서 콘텐츠로서의 가치가 있는 아이템을 발굴하는 시간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작가 신청 팁을 찾아보면서 활동 계획이나 자기소개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작가 신청을 하지 않은 채로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지금까지 비공개로 포스팅해 온 책 리뷰 몇 편을 작가의 서랍에 올려서 작가 신청을 했다. 다행히도 바로 브런치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여태껏 신청을 질질 끌 필요가 없었는데 어째서 한 번의 시도조차 망설였던 걸까. 탈락에 대한 두려움과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자기 검열 때문이었을 것이다. 브런치를 계기로 어떤 일이든 우선 두드려 보자는 식의 마인드를 더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한 분야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탁월함의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래도 극소수임에 틀림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월한 재능보다는 여러 재능을 애매한 정도로 갖고 있다. 상위 몇 퍼센트 내에 들긴 어려운 재능이라고 해서 발휘할 기회가 없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애매한 재능은 애매한 재능 나름의 미학과 가치가 있다. 각자 만들어 낼 수 있는 미학은 제각각이다. 다름 아닌 나이기에 가능한 재능 조합으로 고유의 미학을 만들어 가는 것, 꽤 근사한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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