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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May 15. 2022

빈곤은 소멸되지 않는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리뷰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저자 배수아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출간일 2003.03.19

페이지 296


가족들과 떨어져 독립을 한지 꽤 오래됐지만 이사를 위해 집을 알아보다 보면 울적해진다. 소득에서 꽤 많은 비율의 금액을 다달이 월세로 내면서 이렇게 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월세나 관리비를 만원 단위로 셈하며 정해둔 마지노선 아래의 집을 보러 다니면서 주저앉아 울고 싶어지곤 했다. 집 자체의 가치보다 입지가 어떤가가 부동산에선 더 중요한 시세 측정 원리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월세 50만 원에 선택 가능한 범위가 잠만 잘 수 있을 정도의 닭장식 원룸 정도라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어려웠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 분노의 원인은 결국 월세 50만 원으로 마지노선을 정할 수밖에 없는 내 상황 자체에서 오는 비애였다. 보통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평범한 회사를 다니면서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노동에 쓰는데도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기 어려운 5평 남짓한 원룸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의식주 같은 인생의 기본적인 생활에 대한 선택에서마저도 존엄성이 흔들리더라도 금액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그 선택 기준이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당연한 내가 서글펐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을 읽으며 중반부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세부적인 내용은 다를 수 있지만 크게는 비슷한 맥락이었다. 등장인물 진주는 신혼집으로 살 저렴한 집을 보러 갔다가 집 자체보다는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빈곤한—단순한 경제적 가난을 의미하지 않는다—모습에 1차 충격, 그들 중 하나가 자신의 대학 시절의 교수였음을 깨닫고 2차 충격을 받는다. 지금은 일시적으로 가난에 편입되어 있을 뿐 노력해서 돈을 모으다 보면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깨지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지 20년도 더 지난 지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난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성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절대적인 빈곤의 문제라기보다는 ‘돈’에 대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없는 쪽에 가까운 문제의식이다.


이 책에는 여러 빈곤한 인간 군상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등장한다. 꽤 오래전 출간된 소설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 가난의 모습도 있었고, 앞서 말한 것처럼 뼈저리게 공감 가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소설의 주제의식이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특히 <예비적 서문—슬픈 빈곤의 사회>를 읽으면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떠올랐다.


나는 단 한순간의 위기에도 처절하게 무너지는 아슬아슬한 소시민 계층의 삶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이다. 단 한 번의 잘못된 금융 사고, 단 한 번의 질병, 단 한 번의 실업 등에도 순식간에 그들의 통장은 잔고를 남기지 않고 빚이 쌓여가며 그들의 가정은 파괴되고 아이들은 방치되고 애정은 차갑게 식고 더 이상의 교육이나 문화적인 혜택은 바랄 수도 없어지는 것이다.


《기생충》의 주인공 가족도 소시민에서 중산층 정도였다. 엄마는 전 투포환 메달리스트였고, 아빠는 (비록 망했지만) 몇 차례의 자영업을 했다. 자녀들은 모두 과외 선생님으로도 통할 정도의 교육을 받았다. 애초에 자녀를 4수를 시킬 수 있었다는 건 절대적 빈곤층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업 실패로 인해 빈곤층이 된 케이스였다. 실패가 돌이키기 어려운 경제적 하락을 불러온다는 것은 사회안전망이 그만큼 미비하다는 의미다. 과도하게 경쟁적인 지금의 사회 분위기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사회안전망이 탄탄하지 않은 사회에서 빈곤은 곧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령 2022년에 주 120시간 노동을 운운한다거나 말이다. 경제 발전과 높은 교육 수준으로 ‘인간적인 삶’의 기준은 점점 상승하고 있는데, 사회 시스템은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어쩌면 안 하고— 있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에서 제기하는 빈곤에 대한 문제의식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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