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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May 21. 2022

비혼에 '각오'가 필요한 이유

《지갑의 속삭임》리뷰


지갑의 속삭임

저자 무레 요코

역자 박정임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18.11.21

페이지 232


내 인생에 결혼은 없다는 생각을 점점 굳혀가던 나는 고민이 많아졌다. 결혼 제도 아래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각오하고 계획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결혼을 하더라도 인생 계획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인데 많은 사람들이 택하지 않은 길이라서 막연하게 불안했던 것 같다.


결혼 제도에 속하지 않고 나이 든다는 것이 두려웠다. 마치 선행 연구 논문이 거의 없는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기분이었다. 주거를 비롯한 경제적 문제, 자아실현과 커리어 설계, 건강과 안전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나 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대부분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만큼의 부를 가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내가 가질만한 부로 어떤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가령 외로움, 스스로 해결할 자신이 없는 생활에서 생기는 이슈들, 자아실현하는 삶의 추구 같은 것들에 대한 대비를 해야겠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지갑의 속삭임》이 눈에 들어온 건 그런 맥락에서였다. 저자가 《카모메 식당》 등의 작가여서 믿음이 갔다. 대단한 팁이 있다기보다는 인생 선배의 삶과 생각을 접할 수 있는 에세이다. 혼자서도 잘 살아가기 위해 건강과 체력에 신경을 써야 하고,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계획도 필요하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속하지 않을 뿐이지 어떤 공동체를 이루어 살게 될지도 모른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에게 공동체는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내 사업을 하지 않는 한 언제까지 노동을 지속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회사 밖 1인으로서도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공동체를 구축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했다.


경제력이나 체력, 커뮤니티 구축 외에도 일상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때가 종종 있다. 수술하거나 입원할 정도의 병에 걸리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주의력이 떨어져서 생기는 자잘한 사고가 많아졌다. 불편한 신발을 신은 것도 아닌데 길에서 갑자기 넘어지거나 프라이팬을 인덕션 위에 올려놓고 잊어버리기도 한다. 어쩌다 생겼는지 모를 멍이 다리나 팔에 들어 있는 건 다반사다.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항상 주의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이 에세이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중장년이 되면 젊었을 때는 상상도 못 했던 몸상태가 된다. 뜻밖의 상황이 생기면 마땅히 해야 할 반응도, 대응도 할 수 없게 된다. 어린아이에게 집안이 절대 안전한 환경이 아니듯 나이 든 사람에게도 똑같이 위험하다.(중략)
'미래를 생각하면 집안에서의 일은, 특히 혼자 사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조심해야만 해.' 그렇게 결심한 후로는 동작 하나하나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비혼하려면 왜 '각오'가 필요한가를 생각해 본다. 아마 사회 자체가 결혼 제도로 이루어진 가족에 최적화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혼자로 살아가기엔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각오'가 필요한 것이다. 1인 가구든 결혼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공동체든 결혼 공동체든 상관없이 안전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제도적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내 상황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해보려 한다. 안전하게, 내가 원하는 인생에 가깝게 살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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