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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초록 Jun 19. 2022

당신은 '진짜'입니까?

《그냥 하지 말라》 리뷰


그냥 하지 말라

저자 송길영

출판사 북스톤

출간일 2021.10.05

페이지 284


언젠가부터 무언가를 하기가 귀찮아질 때마다 꺼내 드는 말이 있다. 'Just do it', 나이키의 슬로건으로  알려진 말이다. 과거의 나는 어떤 일을  때마다 걱정과 생각이 많아서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좋게 말하면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어서였지만, 나쁘게 말하면 생각만 하느라 행동을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걱정할 시간에 행동을 하자는 쪽으로 마인드를 바꾸고 나서 'Just do it', 그냥 하자는 말을 좌우명처럼 마음에 담아두게 되었다. 그런 내게 신조를 부정하는 듯한 《그냥 하지 말라》는 제목은 다소 도발적이었다.


저자는 빅데이터 분야에서 가장 미디어 노출이 많은 데이터 분석가로, 이미 익숙한 인물이다. 저자가 부사장으로 있는 바이브컴퍼니 또한 빅데이터를 통한 사회 분석이나 NLP에 관심이 있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한 회사다. 온라인 뉴스 및 소셜 미디어를 분석하는 서비스를 갖고 있는 회사인 만큼, 이 분야의 스피커라고 말할 수 있는 저자가 사회 변화 흐름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이 책을 선택했다.


일단 '그냥 하지 말라'는 의미는 방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생각하지 않고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했다가는 소진되기만 할 수 있다. 흔히 '몇 년 후 없어질 직업' 같은 목록을 보기도 하는데, 이 몇 년 후가 얼마나 앞당겨질지 알 수가 없다. 코로나로 인해 얼마나 빨리 무인화가 진행되었는지, 얼마나 갑작스럽게 재택근무가 도입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 속에서 없어질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 지금 노력을 하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헛수고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하기 전에 변화의 흐름을 고려해서 방향을 잘 잡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장 <변화>와 3장 <적응>에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가속화한 사회 변화의 모습과 적응의 필요성에 대해 다뤘다. 사회 변화를 감지하는 비즈니스의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스피커인 만큼 분석 내용도 예리하고 전달도 명쾌했다. 우리가 은연중에 느끼고 있던 변화 양상을 정리된 글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데이터로 인해 과정 또한 투명해지기 때문에 삶에 투명성을 탑재해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또 하나, 우리 삶에 투명성을 반드시 탑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나우 데이터로 기록되는 시대임을 잊지 마세요. 투명한 시대에는 의사결정 과정과 근거, 나아가 우리 삶 또한 투명해야 합니다.
투명성의 가장 큰 이슈는 단계별 충실함입니다. 지금까지는 끝이 좋으면 좋은 거였는데, 이제는 모든 단계가 좋아야 해요. 과정이 중요해집니다. 과거에는 과정의 중요성을 주로 '어떻게 효율을 높일지'의 범주로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절차적 정당성'의 이슈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컨플루언스, 지라 같은 협업 툴을 실제 업무에서 활용하면서 놀란 점 중 하나가 편집 히스토리를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개발 분야의 경우 깃허브에서 커밋 이력을 볼 수 있다. 일의 결과뿐 아니라 과정까지도 모두 모니터링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모든 과정이 나우 데이터로 기록되는 시대라는 저자의 말이 납득 가는 지점이다. 저자는 '예전에는 결과로 대충 퉁치는 게 가능했는데, 이제는 매 단계가 보이니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과정도 결과만큼 중요하다고 여기는 입장으로서, 과정의 투명성이 중시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매우 반가웠다.


책의 이야기는 결국 '진정성'으로 이어진다. 과정 하나하나가 기록되는 지금은 진정성을 검증하기가 예전보다 훨씬 더 수월해졌다. 과거 SNS 이력으로 학폭 전력이 드러나 논란이 되는 연예인을 떠올려 보면 아주 쉽다. 이제는 적당히 이미지를 만들어 파는 '눈속임'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겉핥기식의 사회 공헌은 이제 대중들에게 어필이 어렵다. 고민의 흔적이 담긴 일관적인 메시지를 꾸준히 발신한 개인 및 기업이 살아남는다. 나는 저자의 전망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리고 그 전망대로 되기를 바란다.


진정성이 가능하려면 철학적으로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의미 소비 시대에는 상품이 사상이 되고, 사상이 상품이 됩니다. 철학이 팔리는 것이지 물질이 팔리는 게 아니에요.


예전에 신규 사업을 기획하는 조직에 속한 적이 있었다. 여러 아이디어가 오가던 중, 여성 타깃의 서비스 아이디어를 내면서 '요새 페미니즘이 트렌드니까 이쪽을 타기팅하자'는 말에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로 여성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선행되었는가가 의문이었고, 그런 고민 없이 '트렌드니까' 편승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안이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진정성이 결여된 접근은 좋지 않다는 것을 그때는 설득하기가 어려웠는데, 이 책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이제 의도의 진정성을 판별하려고 하고, 그게 가능한 사회에 진입했기 때문에 그런 겉핥기식의 편승은 '먹히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고민의 총량을 파는 것입니다. (중략)
고민의 총량이란 내가 했던 시도의 총합이므로, 내 전문성 및 숙고의 결과를 파는 것입니다. 이는 시간의 축적도 있지만 이해와 지식의 총합도 되기 때문에, 그만큼의 해박함을 어떻게 만들어갈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게 결여돼 있으면 노동을 팔아야 하는데, 노동은 AI가 가져갈 테니까요.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원류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드는 작업이지, 예전처럼 여기 우리 제품이 있다고 알리는 데 몰두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죠.

지금까지 여러 사이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은 (완전 기술적 연구 쪽이 아닌 이상) 결국 어떤 프로젝트든 '페인포인트를 고민해 그 해결법을 담은 아이디어'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문제가 무엇이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한 프로젝트는 단연 티가 난다. 이런 아이디어는 심지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나는 이 고민의 시간과 깊이가 즉 진정성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그냥 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면, 내 결론은 이렇다. '우선 '진짜'가 되는 방향으로 비전을 설정한다. 'Just do it'은 그 다음의 과제다.' 독서를 마치고 나니 내 비전이 잘못된 방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기존 가치관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종종 점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다시 그냥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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