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을 애도하고 진정한 나를 만나야할 때

마흔이 되면.

by 박근필 작가

정신분석가인 융은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고 했다. 삶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혼란을 겪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의 저자 제임스 홀리스에 따르면 우리는 1차 성인기인 12~40세까지 누구의 아들딸, 누구의 엄마 아빠, 어느 회사의 팀장으로서 가족과 사회 안에서 사회화된다. 그것은 진정한 본성에 따르기보다는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고 선택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키워진 결과로서의 삶에 가깝다. 즉 진정한 자신에게서 멀어진 채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 마흔이 되면 우리가 보낸 시간들이 오롯이 기록된 과거의 책장을 넘기며, 이제껏 열심히 일궈 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해도, 내가 누구이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내가 성취한 게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몰려온다. 아직도 원하는 것이 많은데,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우리에게 남은 선택의 폭은 점점 줄어만 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과 젊은 날들은 가 버렸고,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애도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이처럼 중년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삶을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즉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과 맡아 온 역할들을 빼고 나면 나는 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봄으로써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애도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과 맡아 온 역할들을 빼고 나면 나는 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봄으로써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까지 앞만 보며 달려왔다.

내가 아닌 세상과 남의 기준, 시선에 맞춰 사느라 애쓰기도 한 시간이었다.


마흔이 되니 하나 둘씩 뭐가 보이기 시작한다.

앞만 보지 않고 옆도 보고 뒤도 본다.


잃어버린 것을 애도하고 싶다.

그런 시간을 갖고 싶다.


이젠 오롯이 '나'를 중심에 두고 살고 싶다.

나를 완전히 완벽히 알아야만 가능하다.


나에 대해서 묻고 또 물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하고 하지 말지.


안개가 서서히 걷혀지기 시작했다.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듬 더듬 거리며 한 발 한 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이제 고작 마흔인걸 감사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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