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to Dec 01. 2018

사라지다

초밥집과 함께

나는 초밥을 좋아한다. 초밥을 좋아하게 된 것은 4년 전부터인데 그때 사귀던 남자 친구 C와 단골이던 초밥집이 있었다. 위치는 C의 직장 근처였다. 그땐 거의 모든 데이트가 그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나는 이별 후 얼마간 그 근처를 가는 것이 싫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두려웠다.


나는 겁이 많고 인연에 맺고 끊음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라, 이별 후에도 오랫동안 C의 소식을 살펴보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의 사랑을 시작하고 신뢰하기 시작하고 난 후부터는 더 이상 보지 않았다. 내 안에 공간이 있다면 넓지 않을 것이다. 그 공간에서 네가 C의 그림자를 내보내 주었다.


그러나 너를 만나면서도 가끔씩 떠오르던 것이 있었다. 바로 그 초밥집이다.


그 초밥집에 많은 추억이 있겠지만은 다행히도 그런 것은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그 초밥의 맛과 충분한 양과 친절이 종종 떠올랐다. 특히, 너와 초밥집을 가는 날이면 확실하게 떠올랐다. 아쉬웠다.


식전 식욕을 돋우는 초고추장 드레싱의 연어 샐러드, 도톰하고 부드러운 식감의 연어초밥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초밥 10피스, 몇 개를 남기고 나오는 뜨끈하고 깔끔한 우동, 다 먹을 때쯤 단골임을 알아본 여사장님의 달달한 방울토마토 절임, 그리고 따뜻한 한마디와 한마디.


잘 맞는 음식점을 만나는 일은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C와의 이별 후 갔던 수많은 음식점들 가운데에서도 아직 그만큼 마음에 드는 집을 찾지 못했다.


며칠 전 너와 그 근처의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나는 그 초밥집에 가고 싶었다. 사실 나는 자주 그곳에 가고 싶었다. 너는 내가 그곳에 누구와 갔는지 알면서도 같이 가보자고 해주었다. 너는 별 의미를 두지 않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내가 가고 싶어 하니까 가자고 했을 것이다. 그런 너는 나에게 정말 멋진 사람이다. 나처럼 여기저기 불필요한 의미를 부여하며 속좁게 구는 사람은 분명 따라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주 익숙하게 지도도 보지 않고 그곳에 갔는 데, 그곳에 없었다. 나는 지도를 검색하고 다시금 한 블록을 감싸고돌며 그 초밥집을 찾아보았지만, 그곳에 없었다. 그곳에는 다른 참치회집이 있었다. 더 고급스럽고 더 비싼 그런 집으로 바뀌었다. 외관은 나무로 된 틀과 간판이 그대로였지만, 간판 안에 식당 이름이 바뀌고 내부가 좌식과 입식 두 가지로 바뀌어 있었다. 사장은 그대로 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그리고 멍하게 여러번 중얼거렸다.


 ‘사라졌어, 사라졌어.’


그렇다. 사라졌다. 그때의 나와 그때의 C, 그때의 초밥집.

오랜만에 C의 그림자가 나를 드리웠다. 나는 오랜만에 C의 소식을 찾아보았다. 아무 느낌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별 후, 나는 긴 시간 이별을 체감하지 못했다. 다시 전화를 걸어도 받을 C 였기에, 오랫동안 나는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가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별이라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긴 시간 그랬다. 심지어는 지금 나의 너를 만나는 동안에도 나는 무언가 C와 완전히 끊어진 것 같지 않았다. 사라지지 않는 느낌을 가진 채였다. 나는 모든 이별이 그런 것일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오랜시간 만나왔으니 앞으로 평생 이렇게 가늘게나마 이어진 느낌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이런게 이별인가 하고 생각했다.


너를 만나고 한동안 너와 행복한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그 한동안은 C의 소식을 찾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초밥집을 찾았더니, 사라졌다. 초밥집도 C도.


아니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초밥집은 참치집이 되어있었다. 너는 무엇이 되었을까.

확실한 것은 너는 나의 것이 아닌 것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참치집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의 내가 좋아하던 초밥집이 아니니까.



바로 이전, 사랑에 관한 글 '사랑이 사라질까'에서 나는 사라지지 않는 다고 반복해서 말하였다. 어떠한 설득력을 갖춘 주장은 아니었으나 사라지지 않는 다고 확신했다. 사라지지 않으나 리모델링, 리뉴얼, 또는 완전히 다른 집으로. 그것은 아마 그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가히 사라졌다고 말할 만하다.


사라졌다. 초밥집과 함께 C는 사라졌다. 그러나 그리움이 남아있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것이 아주 사라질 수는 없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사라졌다. 사라졌다.

...



지금 나의 너에게 이 감정들은 분명 어렵지만 이해해줄 거라 믿는 다. 너는 나처럼 속좁게 구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앞으로 계속해서 너와 함께 좋아하는 음식점을 찾아낼 것이기에.


최근 발견한 오믈렛 맛집!!!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이 사라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