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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o Jan 16. 2019

왜 이렇게 서운한 것일까

서운 서운 열매를 먹었나

나와 꼭 맞는 사람이란 게 있을까.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몇 명 존재한다고 하여도 그런 존재를 만나는 것이 가능할까. 꼭 맞지 않더라도 그런 부분을 사랑으로 메워 나가는 것이 더 깊은 사랑이 아닐까. 그런데... 꼭 맞지 않아 노력하는 사랑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나는 너를 만나 정말로 나에게 충분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너와의 연애에서 나는 그만큼 충분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고 자주 보아도 질리지 않고 더 자주 보고 싶은 매일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요즘 왜 이렇게 서운한 게 늘어가는 걸까. 어느 순간, 서운에 계속해서 몰입하다 보면 한없이 서운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너는 너무도 좋은 사람인데, 너는 나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는데, 나는 왜 이렇게 서운한 것일까.



1. 욕심 - 사람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는 걸까. 계속해서 바라기만 하는 것일까. 가슴을 내놓았으니 이제 간이고 쓸개고 다 내놓아라, 이런 것일까. 마음을 가졌으니 시간도 돈도 관심도 모두 다 나에게만 써라, 이런 것일까.


2. 기분 탓 - 오늘의 기분은 서운. 그것처럼 그냥 어느 날은 행복, 어느 날은 고마움, 어느 날은 서운인 것일까. 오늘의 기분을 서운으로 정하면 하루 종일 서운한 점들만 찾아내고 온갖 서운함이 일어나는 것일까. 보통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털털하게 지나갔던 것들도 서운함으로 변하는 것일까. 서운한 안경을 낀 것처럼 온 세상이 서운으로 물드는 그런 것일까.


3. 너의 변화 - 그래, 이를테면 인터넷에 흔하게 돌아다니는 썰들. 모든 남자나 여자에 대한 사랑을 일반화시키는 그런 이야기들이 너의 이야기인 것인가. 처음 시작할 때에는 사랑에 빠진 상태로 노력하는 상태, 그래서 잘해주고 사랑을 표현하고 감동을 주는 그런 변화한 상태에서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말. 실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인데 상대는 처음 만날 때와 다른 모습에 그것을 '변했다'라고 느끼는 그런 것. 

혹은 금세 다시 풀릴 테니 내가 조금 서운해해도 그냥 내버려 두는 것.


나는 사람을 일반화시키거나 어떤 한 가지 최악의 썰을 풀어놓는 커뮤니티 등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런다고 그런 일들이 아예 내 귀로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귀담아듣지 않는 데도, 마음이 약해지고 어지러울 때에는 미신이나 운세를 믿듯 그렇게 의지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4. 나의 변화 - 사실 너는 그대로이고, 변한 것은 나. 잘해주는 것에 익숙해져 그다지 고마움을 느끼지도 못하고, 처음에는 감탄했던 것들이 익숙해지며 감탄이 일상이 되고 고마움이 잦아지다 사라지는 것일까. 익숙해진다는 것은 결국 더 이상 고마움도 모르는 나의 변화 아닐까. 


나의 사랑이 너의 사랑보다 조금 더 커진 건 아닐까. 일종의 변화라면 변화일 수 있다. 사랑의 크기를 재고 따지던 어린날의 연애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서툴지만 뜨거웠던 그 날들이 귀엽고 그립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지금 나는 내 사랑이 너의 사랑보다 크길 바란다. 그러나 사랑이 더 큰 것이 었다면 분명, 나를 서운하게 하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너의 사랑이 내 것보다 작아서 생기는 그런 서운함은 아닌 것이다. 내가 더 사랑해서 생기는 서운함이 아니라고 생각되니 서운할 필요가 없다. 나도 모든 서운을 이길 정도로 너를 사랑해주지 못하는 것이니까, 나의 서운함에 서운할 것은 오히려 너이다.



모든 것은 단 한 가지의 이유 만일 수 없으니, 복합적인 것들로 인한 서운함. 그냥 이 서운함은 자연스러운 흐름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매일매일 똑같은 풍경처럼 보이지만 나무는 어느새 잎이 다 떨어지고 겨울을 맞이했다. 겨울이 온 지가 한참 되었는 데 나는 눈이 내리자 겨울임을 깨달았다. 계절이 변하듯이 사람도 변하고 늙고 그런 사람들이 하는 사랑도 변하고 익어간다.


그 와중에 사랑이 언제나 최고점일 수는 없겠지. 설사 최고의 사랑을 매일매일 한다고 해도 사람에게는 망각과 적응이라는 게 있다. 잊어버리고 적응하는 것, 이 두 가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것인데 헤어짐에 임박한 사랑을 연장시키기도 하지만 최고의 사랑을 서운함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서운해하면서도 고마워하고 미안해하고 있다. 이 서운함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 순 없으나 결국은 이것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일말의 기대도 서운도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일 테니까. 그리고 나는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는 서운을 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혹시 정체 모를 서운이 들켜 버리는 날에는 나보다 너를 더 서운하게 만들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서운한 것은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나오기도 하겠지만, 그저 사랑의 과정 중에 더더 사랑해줘 하는 상태를 지나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끔 투정 어린 서운함으로 삐죽되더라도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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