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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to Jun 03. 2019

디자이너의 세상

거대한 세상과 마주했을 때

디자이너로 글을 쓰지 않은 지 4개월 정도가 지났다.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으로 글을 쓰지 않은지도 2개월 하고 보름이 지났다. 갑자기 글을 쓰기 어려워졌다.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금까지 쓴 글들도 서버에서 내릴까 하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일들이 언젠가부터는 생략되기도 한다. 너무 기본적인 단계이기에 생략하게 되어버려 진다. 나는 평화로운 환경에서 많은 생략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 기본적이지만, 아주 중요한 일들을 생략하기에 이르렀다. 매일매일 벌어지는 모든 작고 큰 일들에서 나의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것을 생략해버렸다.


1. 몇 달간 잔병치레가 없었더니, 나는 아침을 생략하게 되었다.

2. 좋아하는 대리님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더니, 업무 관련 메신저를 보낼 때 인사를 생략하게 되었다.

3. 자주 하는 디자인이 쉬워졌다고 생각이 들면서, 콘텐츠에 대한 이해와 고민을 생략하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4. 꾸준히 글을 쓰게 되고 좋아요와 구독자가 늘어났더니, 생각과 의심을 생략한 채 내가 옳다는 식의 글을 쓰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 좋아요가 늘어나고 구독자가 늘어나며, 나는 자신만만해졌는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공감받고 있다고 말이다. 실은 읽은 사람들 중 겨우 몇 명이 공감을 해줬을 뿐인데.


이 밖에 아주 다양한 생략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생략하자고 정하여 생략되었던 것은 거의 없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많은 일들이 생략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아주 기본적이며, 아주 중요한 일들이었다. 건강에 있어서 식사, 관계에 있어서 인사, 디자인에 있어서 이해와 고민, 글을 쓰는 데에 있어서 생각과 의심. 모든 것들이 아주 중요한 것들이었다.



우리는 목적지를 가기 전에 현재의 위치를 확인한다. 그리고 방향을 정한다. 걷는다. 현재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목적지를 향한다고 하여도 도착하지 못할 수 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나의 이런 거만하고 철없는 '생략'을 어떻게 알 수 있게 되었는가 하면, 그것은 디자인에 대한 나의 진심이었다.


디자인 관련 공부를 다시 시작하며, 글을 쓸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세상은 언제나 아주 작은 세상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 하는 생각에 자신이 없어졌다. 나의 생각과 지식에 대하여 의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자꾸만 의심하며 나의 위치를 확인하게 되었다. 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떠올렸다.



글을 쓰지 못했던 몇 개월 간은 거대한 세상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가 틀린 거면 어쩌지', '누군가 정말 깊고 넓은 지식과 실력을 갖춘 디자이너가 내 글을 보고 혐오감을 느끼면 어쩌지', '내 생각에 빠져 나만 좋은 글을 쓰고 있었던 거면 어쩌지' 등등. 지금도 두려운 생각들이 내 턱주가리를 날리면 머리가 멍해진다.


그러나 결국에 나는 Baby Designer인 것이다. 나는 굉장한 디자인 지식을 자랑하려 이 매거진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일기를 쓰듯 솔직하게 나의 디자이너 인생을 쓰고 싶었다. 대학교 입학, 스무 살부터 디자인을 시작한 나는 줄곧 디자인이 싫었던 적이 없었다. 그렇게 다시 솔직한 디자이너의 일기로 나의 성장을 기록해보기로 하였다. 나와 같은 디자이너들과 공감을 하면 좋을 것이고, 혹시 그게 잘 안되더라도 나는 나만의 일기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 자꾸만 글을 쓰며, 나의 위치를 계속해서 확인한다면 이번과 같은 생략을 조금 더 조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다시 스스로의 위치를 계속해서 점검하며 나만의 속도로 걸어 나가기로 마음을 잡았다.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나는 스펙도 좋지 않고, 심지어 정확하게 일치되는 전공을 졸업하지도 않았다. 엄청 크고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며, 좋은 연봉을 받는 것도 아니다. 나는 매일 대단하고 감동적인 디자인을 우러러보며 시기 질투, 부러움을 담은 눈으로 바라보고 자괴감을 느낀다. 대단하게 잘하고 싶은 마음에 매일매일 조급하다.


그래도 나는 나를 응원해주고 싶다.

나는 디자인을 좋아하니까, 작지만 소중한 나의 디자인 세상을 조금씩 넓혀 나가 보자.

잠시, 거대한 세상 앞에 무릎 꿇었다. 우울하고 속상했다. 세상에 천재가 왜 이렇게 많을까!!! 생각했다.



그때 나에게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 디자이너의 팟캐스트를 공유하고 싶다. 디자인 스펙트럼에서 진행했던 디자인 테이블 팟캐스트이다. https://www.designspectrum.org/designtable-s1e13 그중에 구글의 인터랙티브 디벨로퍼 김종민 님의 이야기이다.


천재는 아주 극소수, 우리 모두는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거대한 세상에 마주한, 나와 같은 Baby Designer 모두... 우리만의 속도로 오늘도 go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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