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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부장 May 08. 2019

6. 음식이란 추억을 먹는 것

one-way ticket project #06 상트 페테르부르크


아침 8시가 조금 넘어 기차는 마지막 플랫폼에 들어선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한 길었던 기차여행이 드디어 끝나게 되는 순간.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은 모스크바이지만, 내 기차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이 곳 상트 페테르부르크이다.

사실 스치듯 머물렀던 모스크바에 내릴 때 보다 이 곳에 발을 딛는 순간이 더 벅차오른다. 언젠가는 꼭 한번 돌아와야 했던 곳, 내 인생의 아름다운 추억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 바로 그곳에 다시 돌아왔다. 거의 20년 만에...




숙소에 짐을 풀고,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핫 샤워를 하고 나면 침대에 쓰러져 깊이 한숨 잘거라 생각했다. 큰 불편함 없이 지냈다고는 하지만 하루 종일 덜컹이고 있는 기차에서의 생활이 안락한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딱히 잠은 오지 않았다. 그보다는 빨리 넵스끼 거리를 걷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지난 추억을 모두 리뷰할 수 있을 만큼 머물 계획이었지만 마음은 그저 조급하기만 하다.

5년 전 잠시 이 도시에 들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나누고 있는 수많은 추억들을 즐기기에 단지 만 하루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아마도 이번 빼쩨르 여행은 여행이라기보단 추억을 곱씹는 시간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 추억 팔이의 시작으로 가장 적당한 곳이 있다. 빼쩨르에 다시 오면 가장 먼저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곳. 그곳에 가기 위해 서둘러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숙소 밖을 나선다.


* 상트 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는 러시아어 발음으로 '쌍뜨 빼쩨르부르크'에 가까워 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난 보통 빼쩨르~ 빼쩨르~ 라고 불렀다




예전에 친구랑 자주 가던 까페가 있었다. 넵스끼 거리에 있는 어느 성당 뒷골목 반지하에 있던 그곳은 사실 까페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허름하고 음습했다. 언제나 인파로 붐비는 넵스끼였지만,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존재조차 알지 못할 것 같은 구석진 한 편에 자리 잡은 까페. 잔뜩 멋을 부린 사람들보다 일상에 지친 블루칼라의 사람들이 잠시 한숨을 돌리러 오던 까페. 시내에 나오게 되는 날이면 우리는 꼭 그 까페에 들러 쁴쉬끼(пышки)를 먹곤 했었다. 너무나 일상적이었던 그 시간들은 한국에 돌아온 후 어느 무렵부터인가 강렬한 기억으로 되살아났고, 언젠가 꼭 한번 우리만의 비밀 아지트 같았던 그곳에서 싸구려 쁴쉬끼와 차 한 잔이 그토록 다시 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 까페를 찾아가는 내내 과연 아직도 그 집이 같은 자리에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너무 오래전 일이니까....


사진 속에 보이는 반지하 자리였다...



역시 없다.

분명 이 자리였는데... 분명 여기가 맞는데...

없어졌을 거란 생각이 크기는 했지만 막상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절망스러웠다.

아쉬운 마음에 바로 앞 벤치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까페가 있던 그 자리만 쳐다보고 앉아 있었다.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름도 모르는 그 까페에 다시 앉아 이 세상에서 제일 맛난 음식 중 하나인 그 쁴쉬끼를 먹고 싶었는데...





하는 수없이 제일 유명하다는 쁴쉬끼 집으로 향한다. 추억이라는 달콤한 맛을 걷어내더라도 쁴쉬끼는 꼭 다시 먹고 싶었으니까. 워낙에 유명한 집이라 줄을 좀 서야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웬걸!! 사람이 별로 없다. 유명세가 끝난 건가, 아님 내가 운 좋게 한가한 시간에 온 건가, 긴가민가 하며 마침내 받아 든 쁴쉬끼를 한 입 먹는 순간...




그래!!!

바로 이거다!!!

바로 이 맛이다!!! 바로 이 느낌이다!!!

쁴쉬끼 한입에 20여 년 전 추억들이 모두 순식간에 떠오른다.

흑흑... 내가 이걸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예전처럼 чай(차)랑 같이 먹는 게 아니라서 아쉽긴 하지만, 이 맛은 내 기억 속에 있는 그대로다.  3개 시켜 먹을걸. 내가 왜 2개밖에 안 시켰을까... 곧 저녁을 먹을 거라고 주저주저했다. 나란 인간도 참...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쁴쉬끼였는데 그 앞에서 2개냐 3개냐를 고민하다니. 한 개에 300원도 안 하는 건데.  그래 놓곤 한 개 더 먹을 걸이라며 후회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빼쩨르에 있는 2주 동안 매일매일 올 수 있으니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가게를 나선다. 입가에 추억이란 설탕가루가 잔뜩 묻은 행복한 표정으로...





[D+9]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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