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함께 산다

# 강아지 토토를 기억하며

by 루이네


나는 강아지를 키운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고등학생 우리 언니는 남자 친구가 선물을 주었다며 품 속에서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를 꺼냈다. 바닥에 내려놓자 털 때문에 몇 번을 미끄러지던 강아지는 이내 감을 잡고 나에게 걸어왔다. 겨우 나의 발만 했던 그 강아지가 무서웠던 나는 곧장 침대 위로 올라가 언니에게 당장 치우라고 소리쳤고 그것이 나와 토토의 첫 만남이었다. 토토에게 정이 붙기까지 여러 가지 일이 많았지만, 십 년이 지난 지금도 토토는 내 뒤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2017년, 10살의 슈나우저 토토


#토토의 출생과 입양

토토는 집에서 태어난 강아지였다. 어미의 모유를 먹고 자란 토토는 동물병원 위탁 분양을 통해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동물병원에는 형제 한 마리도 함께였다고 한다. 원래 언니는 그 아이까지 함께 데리고 오려했지만 경제적인 부분이나 부모님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토토의 형제는 토토가 세 번째 예방주사를 맞으러 갈 때까지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예방주사를 맞는 날마다 둘은 마치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것처럼 한참을 낑낑거렸다.

토토는 슈나우저이다. 흔히 슈나우저는 조금 방정맞은 종으로 분류되어 미용을 할 때도 오천 원을 더 받는다. 그러나 토토는 달랐다. 형제를 강제로 떼놓고 온 탓이었는지 토토의 우울함은 2 개월간 지속되었다. 산책을 시켜주어도 그때뿐, 집으로 돌아오면 창문을 보거나 소파에서 잠만 잤다. 집에 사람이 와도 눈만 꿈뻑일 뿐 꼬리를 흔들거나 맞이하지 않았다.



#토토의 적응기

우리 집은 현관문을 열면 섬유유연제향이 나는 그런 집이었다. 그러나 토토가 오면서 그 냄새는 점점 강아지 소변 냄새로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 집에서 토토를 좋아하는 사람은 언니와 남동생뿐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 아랫집 치와와에게 쫓긴 기억으로 네 발로 걷는 모든 생물과 친하지 않았고, 개 냄새가 나는 집을 좋아하는 부모님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부모님은 퇴근하고 돌아오실 때마다 습관적으로, 또는 우리에게 들으라는 말로 "냄새~ 어휴 냄새!" 하셨다.

강아지도 눈치는 있다. 누가 자신을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다 안다. 보통 강아지들은 애교를 부리거나 현관문 앞에서 반갑게 맞이해 마음을 돌리기도 한다는데, 토토는 선천적으로 애교가 없는 강아지였다. 부모님이 오면 현관문 앞에 뛰어와서 늑대소리를 내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일종의 경계와 영역표시였다는 것은 나중에나 알게 되었다.

엄마가 토토에게 자주 하던 말들이 있다.


"저놈의 개새끼, 빨리 절에나 데려다줘야지."

"냄새나 저리 가!"


모두 부정적인 말들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토토는 더욱 엄마 근처에 가지 않았다. 토토에게 큰 관심이 없었던 아빠와 달리 엄마의 잔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말은 그래도 쉽게 토토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갔다.


어느 일요일, 엄마는 내 방으로 들어와 날이 좋으니 토토와 나가서 걷고 오자고 말했다. 나는 알겠다 한 후 토토의 몸에 리드 줄을 끼워주었다. 외출에 신난 토토는 꼬리를 흔들며 벌써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준비를 마친 엄마가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엄마가 바닥에 줄을 잡으려 하자 토토는 왜 인지 당황해 베란다 화분 뒤로 숨어버렸다. 어떻게 들어간 건지 화분들 깊숙이 토토는 몸을 숨기고 있었다.

"토토야 산책 가자." 나와 엄마가 말했지만 토토는 고개를 숙이고 제 얼굴을 숨겼다. 그리고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자신을 버리러 간다고 생각하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엄마가 말했다.


"토토야, 너 버리러 가는 것 아니야. 산책 가는 거야."


지금 생각해도 의아한 것은 그 말을 들은 토토가 화분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는 것이다.

그날 엄마와 아빠는 토토를, 토토는 엄마와 아빠를 받아들였다.




#나 그리고 토토

아랫집에 살던 치와와는 작았지만 사나웠다. 그 치와와는 내가 자신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보면 더욱 세게 짖었다. 어느 날 그 치와와는 열린 문틈 사이로 계단을 오르던 나를 발견한 후 먹잇감 보듯 쫓아왔다. 나는 이후 한 차례 더 강아지에게 쫓겼다. 친구네 집 요크셔테리어였다. 나이가 많고 몸이 좋지 않다는 그 강아지는 나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나는 8층부터 죽어라 뛰었지만 강아지는 참 빨랐다. 물리지 않았어도 그날의 공포는 잊지 못한다.

그렇게 무서워했던 강아지였다. 그런 내가 지금 십 년이나 함께 살고 있다. 토토가 아플 때 울며 동물병원으로 뛰어가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나 항상 공유한다. 내가 토토를 좋아하게 된 것은 강아지를 무서워하게 된 것처럼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어쩌다 보니 만나 계속 함께하고 살고 있다는 것뿐이다. 가족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