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가 어때서

그냥 쓰면 되는 것을

by 스페라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글을 쓰는 방법, 즉 ‘스킬’을 배우면 잘 쓸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적이 있다.

특히 드라마 작가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작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작법을 배우기 위해 작가 교육원을 다녔던 적이 있다.


글을 쓰고 품평을 받고,
끝도 없이 퇴고를 하고,
수없이 버려야만 했던 내 원고들…


그 원고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드라마는 인간이다. 인간은 경험이 있어야 쓸 수 있다. 서른쯤 되면 잘 쓸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듣고, 대학생이었던 나는 움츠러들었다.


‘나이 먹고 쓸 수 있는 게 드라마’라는 생각이 강박처럼 머릿속에 박혀버렸다.

그리고 나는 바보처럼 서른을 기다렸다.

‘서른쯤 되면 다시 쓰리라.’

그렇게 드라마 작가의 꿈은 잠시 접고
방송 작가가 되었다.


내가 쓴 글이 방송에 나가고,
내 이름이 자막에 나오고,
내가 쓴 글로 돈을 벌어 밥벌이를 한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고, 행복했다.

하지만 서른쯤 되어가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방송 작가를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나?’


서른쯤에 쓰는 것이 아니라,
서른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써야 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서른쯤에 작가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선생님의 말을 잘못 해석한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없었던 내가 핑계를 ‘이유’인 양 가슴 깊이 박아두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마흔 중반이 되었고,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드라마를 쓰고 있지는 않다.

그렇게도 쓰고 싶어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도 안 쓰고 있는지

스스로도 의문일 때가 있다.

언젠가는 쓸 것 같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이유는 뭘까.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지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회사 일을 하고 있던 워킹맘이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다.

그 엄마가 내게 물었다.
“앞으로 뭐 하고 싶어요?”

나는 생각도 없이

“드라마를 써야겠지.”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엄마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더니 민망해하며 말을 흐렸다.

"언니... 우리가 몇 살인데...."

순간 아... 하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꿈은 젊은 사람들만 꿔야 하는 걸까?

10대, 20대, 심지어 서른이 조금 지났을 때도 내가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라고 하면

아무도 이상하거나, 허황되거나, 말도 안 되는 꿈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흔이 넘으니 그 말에 웃음을 섞은 의심이 따라붙었다.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이 아팠다.


마흔 중반이 되도록 쓰고 있지 않으니 그렇게 말 들을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를 탓했지만, 불안이 밀려왔다.


‘정말 이제는 쓸 수 없는 걸까? 나이가 너무 많나?’

젊었을 때는 나이가 어려서 못 쓴다 했고, 이제는 나이가 많아서 못 쓴다니.

정말 바보 같은 말이다.

그냥 내가 안 썼기 때문인데!




글은 쓰면 된다.

쓰고, 또 쓰고,

그러다 보면 써지는 게 글이다.


새끼 작가 시절,

처음으로 입봉작을 맡았을 때
아무리 써도 글이 안 나와서 울었던 적이 있다.

10초면 10초, 20초면 20초에 딱 맞게
글을 써넣어야 하는데, 아무리 줄여도 10초가 안되고

아무리 늘려도 20초가 안 됐다.


어떤 말을 넣고 빼야 영상 시간에 맞는 글이 되는지 혼란스러웠다.

선배에게 배우고, 다른 작가 글을 보고, 계속해서 쓰고, 고치고, 반복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메인 작가가 되었고,

10년쯤 됐을 때는 글자 수만 봐도 몇 초짜리인지,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글을 보면 선배들처럼 이 글이 누구 글인지도 알 수 있었고

아이들 글을 첨삭해 줄 수도 있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매일 썼기 때문이다.


그 많은 글을 쓰고도 드라마는 한 줄도 안 썼으니 드라마 작가가 될 리가 있나.

나이가 들어서 못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나이를 먹어도, 쓰면 된다.

이제는 그것이 ‘진리’라는 걸 안다.


노산의 아이콘이 최지우라면,
노작(늦게 작가가 된)의 아이콘은 박완서 작가다.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박완서 작가는 마흔 넘어서 작가로 데뷔하지 않았는가.


그 시절의 마흔과 지금의 마흔은 정말 다르다.

요즘 마흔 중반은 ‘애’라는 우리 엄마의 명언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백세 인생.

지금부터 써도 늦지 않으리라.

언젠가는 쓰게 될 그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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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는 쓴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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