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쓰자는 말,
입대하는 녀석에게 통할까?

건강하게 잘 다녀오렴

by 스페라

며칠 전, 조카 녀석이 군대에 입대했다.


입대를 앞두고 우리 집에서 작은 축하 파티를 했는데,
정작 녀석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꽤 고민이 됐다.


군필자였다면 이런저런 조언이라도 해줬을 텐데,
나는 군대라고는 면회 간 기억밖에 없어서...
“건강하게 잘 다녀와”라는 말만으론 왠지 아쉬움이 남았다.


자기 전,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녀석에게
슬며시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이야기 도중,

“운동을 할까? 책을 읽을까?
1년 6개월 동안 뭐든 하나는 꾸준히 해보려고요.”

라는 녀석의 말을 듣고, 나는 ‘이때다!’ 싶었다.


사실 늘 하고 싶었지만,

잔소리처럼 들릴까 봐 꾹 참고 있었는데


“이모는 말이야,
운동도 좋고, 책 읽는 것도 멋지다고 생각해.
근데 그런 멋진 일을 하면서 기록하지 않는 건 조금 아쉬워.

일기를 매일 써보는 건 어때?


훈련 있는 날은 어쩔 수 없지만,
쉬는 날엔 군생활도 적고, 네 마음도 한 줄씩 정리해 보면 좋을 것 같아.”


그 말에 녀석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초등학교 때 숙제로 말고는 써본 적이 없어요...
근데 좋을 것 같긴 해요.”

“그치? 진짜 좋아.
내가 오늘 어떤 일을 했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쓰다 보면

그게 다 네 인생의 조각이 돼.


나중에 보면,
‘내가 그때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때 힘들었구나. 자랐구나.’
스스로를 다시 만나게 돼.”


“이모도 일기 써요?”

“당연하지.”




나는 서재로 후다닥 달려가
내가 쓰는 긴 일기장은 그대로 두고,
녀석이 ‘훅’ 끌릴 만한 5년 일기장을 꺼내왔다.


5년 일기장이란,
한 페이지에 같은 날짜가 5번 반복되고,
각 연도마다 몇 줄씩만 쓸 수 있게 구성된 일기장이다.


예를 들어,

6월 25일
2021 ▷ 오늘은 비가 왔다. 기분이 가라앉았지만 글을 썼다.
2022 ▷ 햇볕이 뜨거웠다. 산책하다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2023 ▷ 같은 날, 다른 감정. 오늘은 괜찮았다.
2024 ▷ 이제 익숙한 하루. 반복되는 일상이 조금 무섭다.
2025 ▷ ……



이렇게 같은 날짜에 내가 어떤 일을 했고,
무슨 기분이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나의 반복, 나의 변화, 나의 흐름.

그 모든 것이 기록된다.


쓰면 쓸수록 더 쓰고 싶어지는,
참 매력적인 일기장이다.


간단하게 쓸 수 있어서 부담이 없고,

몇 년치가 쌓이면 돈을 모으는 기쁨처럼 뿌듯하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 단 하나뿐인 나만의 책이 된다.




나는 종종, 책이 지루할 때 내 일기장을 꺼내 읽는다.
작년의 오늘, 재작년의 오늘, 그리고 몇 해 전의 오늘
같은 날짜에 전혀 다른 내가 있다.


읽다 보면 이런저런 대화가 떠오르고,
남편이나 아이에게
“우리 작년 오늘 뭐 했는지 알아?”
“2년 전엔 여기 갔었더라. 또 가볼까?”
하며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기억이 엇갈릴 땐
“잠깐만!” 하고 일기장을 꺼내
“내 말이 맞지?” 하며 승리의 미소를 짓기도 한다.


녀석에게 이렇게 매력적인 일기장을 보여주니
눈이 동그래졌다.

“이런 일기장이 있는 줄 몰랐어요.”

말로만 “일기 쓰면 좋아” 하는 것보다,

내가 실제로 쓰고 있는 걸 보여주는 게 훨씬 설득력 있었다.

녀석은 진지하게 일기를 고민해 보겠다고 했고,
나는 마음이 생기면 이 일기장을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일기 쓰자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흘려보내 버리거나 꾹 참는다.


“일기? 어릴 때나 쓰는 거지.”
“시간 없어서 못 써.”

그런 말들 속에
정말 좋은 습관 하나가 잊혀지고 있어 안타깝다.


일기는 위대한 습관이다.


글쟁이가 되고 싶다면,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일기 쓰기'다.


매일 쓰는 일기만큼 좋은 훈련은 없다.


일기를 써야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마음을 쏟아내는 글을 쓸 수 있다.


일상의 사소함 속에서
특별함을 포착하는 시선도 생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꾸준히 쓰는 사람이다.


영감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매일 써보는 반복 속에서 자란다.




나는 조카가 군대에서
이 위대한 습관의 힘을 절실히 느꼈으면 좋겠다.
그 힘이,
그 아이의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주기를 바란다.


건강해라.
그리고
네 안에 있는 말들을 꼭, 글로 꺼내어라.
그 말들이 너를 지켜줄 거야.


나는 조카를 향한 이 마음을 일기로 쓰고,

곧 편지로 옮겨
빨간 우체통에 넣을 것이다.


해병대는 손편지만 가능하다고

언니는 아쉬워했지만,

나는 왠지 좋았다.

오랜만에 빨간 우체통에 넣을 수 있다니.


나는 아날로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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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브런치북《그래서 나는 쓴다》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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