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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제 Jul 08. 2020

백두산,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쉬운 재난영화

작년 12월 개봉했던 영화 ‘백두산’은 개봉 이전부터 기대받던 영화였다. 역대 한국 영화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제작비 300억이 투입되었고, 이병헌, 하정우, 마동석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모두 출연했다. 서사로 호평받은 감독 이해준과 촬영으로 호평받은 감독 김병서를 공동감독으로 내세워 분업화한다는 점에서 기획도 완벽했다. 개봉 후 영화는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전개인데 스펙터클에 눈을 떼기 힘들다.’라고 평한 김성훈 평론가의 평처럼 영화는 재난 영화로써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점에 중심을 뒀다. 영화 ‘신과 함께’로 호평받았던 덱스터 스튜디오가 시각효과에 참여하여 클라이맥스 백두산 폭발 신을 연출했다. 1억 달러 이상의 제작비가 소모된 할리우드 영화가 부럽지 않은 장면이었다. 흥행도 손익분기점인 730만 명을 넘긴 820만 관객을 기록하며 성공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아쉽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영화 내에서 아쉬웠던 점에 대해 다루며 영화를 비판해보고자 한다.


1. 기본적인 전개의 필연성 부족


백두산의 주인공, 이병헌과 하정우

영화는 전역을 앞둔 특전사 조인창(하정우 분)이 백두산 폭발의 위기에 투입돼 북한 스파이 리준평(이병헌 분)과 힘을 합쳐 화산 폭발을 막는 이야기다. 흥행을 최우선 목표로 잡은 영화인만큼 안정적인 서사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되지만, 제대로 된 필연성조차 가지지 못했다면 비판을 받아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주인공 일행이 빼돌린 북한의 핵폭탄을 백두산 화산에 충돌시켜 폭발을 막으려 하자 중국, 미국이 이를 막는 부분이다. 두 국가의 특수요원들은 총을 겨누고 핵폭탄을 가져가기 위해 대립한다. 하지만 두 국가가 왜 핵폭탄을 빼돌리려는지에 대한 이유가 없다. 중국은 중국대로 백두산이 폭발하면 피해를 입고,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의 사회기반이 괴멸된다. 백두산 폭발을 막을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 일행을 방해할 명분이 없다. 양국 모두 한국이 핵을 쥐게 되면 위험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지만 부족한 이유다. 핵을 백두산에 쏘지 않는다면 국가 기반이 모두 파괴되어 핵은 쓸모없게 된다. 결국 영화는 주인공과 대립하는 세력을 창조하기 위해 억지스러운 적을 창조한 셈이다. 적국과 핵폭탄을 두고 싸우는 명분을 제대로 세워야 했다. 최소한 국제 테러 조직이 테러 무기로 삼기 위해 핵을 갈취하려 한다는 전개가 있었다면 필연성 면에서 비판을 받진 않았을 것이다.


2. 단순한 연출적 허술함

생각해봐라. 임산부가 한강에 차와 함께 빠졌는데, 아무 문제 없이 빠져나온 다는게 말이 되는 가

백두산은 2019년 7월 21일에 촬영을 마쳐 같은 해 12월 19일에 개봉했다. 촬영 후 편집 과정에서 5개월 정도의 텀을 두고 개봉하는 영화는 많지만, 백두산은 CG 작업이 많이 필요한 영화인만큼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실제로 두 감독도 후반작업에 시간을 쫓겼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슷한 재난 영화였던 ‘해운대’는 7개월의 후반 작업 시간을 가졌다. 백두산이 5개월이란 짧은 시간 만에 후반 작업을 맞춘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연말 성수기를 노린 영화인만큼 12월 개봉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편집 시간이 짧았던 만큼 영화 곳곳에서 허술한 편집이 드러난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후 지진이 발생하는 데도 이에 대해 묘사하지 않고 넘어가는가 하면 해일로 인해 한강에 빠진 임산부가 빠져나오는 장면이 생략된 채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심지어 물에 빠졌는데도 가지고 있던 짐과 종이 서류가 젖지 않았다. 사소한 장면이 아니라 영화 전개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미숙하게 편집한 점이 아쉬웠다.

3. 억지스러운 밈 (Meme)

뀨디쁘띠~ 듣기만 해도 짜증나는 유행어는 처음이다

밈은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특정 문화요소, 콘텐츠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대사가 밈이 되어 마케팅 요소가 되기도 한다. 백두산도 흥행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밈을 만든 것이 보인다. 조인창이 아내를 부르는 별명 ‘큐티쁘띠’가 그것이다. ‘큐티쁘띠’는 영화 속에서 개그 요소로 자주 사용된다. 조인창이 큐티쁘띠라는 잠꼬대를 하면 리준평이 조인창에게 큐티쁘띠가 뭐냐고 질문하고, 이에 조인창이 당황하는 식이다. 문제는 이 밈이 재미없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큐티쁘띠는 대략 10회 정도 언급되었고 대다수가 개그 포인트로 사용됐는데 내가 영화를 봤을 땐 극장 속 누구도 큐티쁘띠라는 밈을 듣고 웃지 않았다. 관객이 만석에 가까웠는데 말이다. ‘큐티쁘띠’를 처음 들었을 땐 별생각 없었지만 반복해서 나오고, 쿠키영상으로도 나오자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행어로 밀고 가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 밈은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용되는 것이다. 영화는 이를 간과하고 마케팅을 위해 만든 인위적 유행어를 만든 듯했다. 


4. 결론

한국 영화 초창기만 해도 영화는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로또 사업이나 마찬가지였다. 제작사는 어리버리한 신인 감독들에게 돈을 쥐어주며 무슨 영화든 제작해보라 했다. 그 결과 '지구를 지켜라', 'JSA 공동경비구역', '플란다스의 개'와 같은 신선한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영화의 흥행공식이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유명한 배우 몇 명, 신파, 100억 이상의 제작비. 3요소의 조화 만으로 흥행이 성공하자 앞서 말한 신선한 영화는 제작되기 힘들어졌고 영화계는 1억짜리 독립영화와 100억짜리 상업영화를 제외하곤 어느 영화도 만들어지지 않는 양극화가 심해졌다. 백두산은 앞서 말한 3요소만으로 채워진 영화다. 줄거리도 없고, 맥락도 없다. 유명한 배우와 신파, 300억의 제작비 만이 있을 뿐이다. 백두산은 CG는 좋았지만 서사 속 뻔함과 허술함으로 실망을 안겼다. 이는 백두산이 12월 흥행을 목적으로 급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그 결과 P&A 비용까지 합쳐 300억이란 초대형 프로젝트가 기획됐지만 그 속은 텅 비어있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됐다. 영화가 돈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기본기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 제작사들은 영화를 만듦에 있어 작품을 만드는 것이란 의무감을 갖고 영화다운 영화를 만들길 바란다. 제2의 백두산이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를 평가하자면

인생영화/기억에 남는 명작/매우 재밌었던 영화/호불호 갈리는 영화/많이 별로인 영화/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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