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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명절, 낯선이의 친절

삶을 지탱하는 건 작지만 소중한 기억이다.

by 슈뢰딩어의 백수

수술을 하고 사나흘 쯤 지난 거 같다. 진통제는 어제 끝났고, 항생제는 아직 먹는다. 어떤 까닭인지 항생제는 먹으면 속이 심하게 뒤집어진다. 멋모르고 빈 속에 먹었다가 위경련 비슷한 것이 와서 길에서 주저앉은 적이 있다. 그 뒤로는 꼭 배를 채우고 약을 먹는다. 그래도 너무 고역이다. 밥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항생제의 존재감은 결코 옅어지지 않는다.


명절이라는 흉물 덕분에 정신이 흐트러지고, 일상이 흐트러졌다.


명절대이동 만큼 한심한 짓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명절에 본가에 가지 않은 지 몇 년이 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추석에 본가에 다녀왔다. 그 이유가 너무 어이가 없는데, 정신이 너무 피곤한 나머지 엄청난 판단 착오를 일으킨 탓이다. 본가에 와서 남편과 한참 얘기를 하기 전까지 나는 내가 그간 명절에 본가에 내려오지 않았음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은 매년 명절마다 본인 본가에만 가고, 나의 본가에는 가지 않았으니, 올해 내가 별스런 주장을 했을 때 '왜?'라고 묻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러마 하고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매년 비슷한 소리를 하는 거 같은데, 올해도 그래, 몹시 고단했다. 가을 즈음에는 고단함을 넘어 고통스럽기까지 했고. 머리가 망가져서 일상이 무탈해도 은근한 불행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데, 요 멏 달은 이런저런 사달이 많기도 많았다. 하루하루 나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애쓰고, 남에게 폐 끼치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버텼다. 그 사이사이 스스로가 너무도 혐오스러워지는, 무언가를 했던 시간과 무언가를 하지 않은 시간들이 혼재했고, 나는 그저 버티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아부을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명절을 형의 선고일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중 하나다. 선고일이 가까워올수록 가슴이 옥죄고 공황발작이 심해진다. 그날 내게 내려질 처벌이 어떤 것일지 너무도 잘 알아서 그 가까워 오는 날을 두려움과 스트레스, 고통으로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조바심이 났나 보다. 피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맞아 버렸다 명절을. 예닐곱 시간을 도로에 갇혀 있었고, 몸과 마음의 회복에 사용할 수도 있었을 귀한 시간을 날려버렸다.


얼른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 밖에 없었다. 집에 가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그렇게 집에 가기 위해 서둘러 본가를 나섰고, 끼니를 거른 채로 항생제를 먹었다. 어김 없이 속이 뒤집어지고 구역질이 났다. 아파트 단지의 인도에 서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역이 치밀어 허리를 펴고 서있을 수가 없었다. 얼굴이 파리해진 모양이다. 누가봐도 상태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까만 레이스 치마를 입고 곁을 지나친 여자가 되돌아와서 말을 건다.


"괜찮으세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도움이 필요하신 거 아닌가 해서.."

"아니에요. 곧 차가 올거에요. 감사합니다."


글로 쓰니까 참.. 그 순간의 느낌이 안 느껴지네.


아파보이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어떤 여자의 걱정스러운 얼굴.

그 얼굴과 목소리를 잊고 싶지 않아서 이 글을 쓴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애써 웃으며 대답했던 그 기분을 잊고 싶지 않아서 이 글을 쓴다.


아무리 짧은 찰나여도, 별거 아닌 이야기여도, 나는 이런 순간들을 꼭 쥐고 세상을 살고 싶다.

이십여 년 전, 횡단보도에서 비를 맞고 서있던 나에게 우산을 씌워준 어떤 대학생 언니에 대한 기억처럼, 사는 내내 수없이 떠올려도 마음이 따듯해지는 그런 기억이 하나 더 늘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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