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오 May 12. 2021

남편의 첫난임병원방문기

인생퀘스트


 예전의 남편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요즘 남편들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떠나서 내 남편에게 참으로 감사한 요즘이다. 어찌 되었건 아무 걱정을 끼지치 않을 만큼 건강에 자신 없는 몸뚱아리인데, 그럼에도 감정 선의 변화 없이 늘 한결같이 있어주는 것이 감사하다. 남편과 함께한 이번 병원 방문에서는 오전엔 남편의 정액검사가, 오후에는 내 나팔관 조영술이 있었다.


 8시 이전에 조착해야 진료가 가능하다며 으름장을 놓았던 비뇨기과 간호사 말에 7시 20분쯤 병원에 도착했다. 정말 아-무도 없는 텅 빈 대기실에 앉아 있으려니 어색해서 남편과 병원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한번 와봤다고 남편에게 안내를 하면서 아는 척하는데 속으론 그런 나 스스로가 좀 웃겼다. 그래도 이번에는 남편이 옆에 있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며칠 전 와서 혼자 덜덜 거렸던 게 없이 편안했다. 시간이 지나 진료실에서 남편의 이름이 호명됐다. 자연스럽게 나도 일어나자 간호사분이 남편만 들어가는 거라며 가로막았다. 들어가서 뭔 비밀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진료를 위해 휑한 진료실 안에서 덩그러니 서서 진료를 위해 바지를 내리라 했다고 한다. 남편은 당황하고 난감했다고.. 더 당황했다는 정액검사 전 내가 뽑았던 피만큼이나 채혈을 몇 통 하고 소변검사도 추가로 했다. 어느덧 사람들로 가득한 병원에서 오전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고 정액검사를 받으러 들어가는 남편에게 귓속말로 내부 모습을 꼭 찍어달라고 졸랐다. 금녀의 구역이 아닌가. 웃기지만 궁금했다. 쭈뼛거리며 얼굴이 붉어져 나온 남편은 분명 민망하고 안에 들어가 어색했을 텐데 고맙게도 사진을 몇 장 찍어 주었다. 밖으로 영상 속 소리가 새어 나와서 민망해 죽을 뻔했단다.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속닥거리며 남편과 키득거리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오전의 남편 진료와 검사가 끝났다. 이제 오늘 이행해야 할 산을 하나 넘은 것일 뿐.


 병원 건물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후딱 해치우고선 조영술을 위해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나팔관조영술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기도 했고 어떻게 하는지 전혀 감도 없었다. 전날 밤에 검색으로 찾아봤는데 아프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냥 불편한 느낌, 심한 생리통 정도 있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비율상 크게 느낌 없이 하는 듯하여 초음파 찍는 정도의 불편함 인가보다 상상만 하고 있었다.

 항생제와 진통제를 양쪽 엉덩이에 한 대씩 맞고서 진통주사가 체 다 퍼지기도 전에 나는 시술대 위에 누웠다. 긴장하지 말고 있으라 했지만 겁도 많은 인간이 긴장을 안할리 없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찢어지는 듯한 고통. 아파서 소리 지르며 운건 처음이었다. 울부짖으니 간호사 두 명이 달려와 나를 부여잡았다. 배가 찢어지듯 아팠고 울면서 남편을 찾았다. 울면서 소리치는 나에게 간호사도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하더라. 좀 진정하고 누워있다가 나가라는 걸 당장 남편 보겠다고 피 흘리며 일어나버렸다. 서럽게 울며 나오는 모습에 앉아있던 남편도 그 앞에 앉아있던 다른 남자도 토끼눈이 되었다. 한동안 시술실 앞에서 진정하고서 진료실로 갔다.


 이번 진료는 지난번 검사들의 결과와 나팔관조영술의 결과는 듣는 게 주였는데 예기치 못하게 폐에 이상점이 보여 타 병원에서 폐 소견을 받아오라는 말을 들었다.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건너편에 있는 병원을 알려주는데 병원에 와서 병만 더 알아가나 싶었다. 진료만 마치고서 집으로 돌아갈 거라는 기대에서 시간이 더 늘어나자 피로감이 더해졌다. 어쨌든 빨리 결과를 들어야 난임병원에서도 진도가 나가니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인근 내과에서 폐 검진을 다시 받은 결과 양폐와 늑막에 과거 염증을 앓은 흔적으로 현재는 문제없다는 소견을 들었다.


 심장 질환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는 '병원에 갈 때마다 병원에 가서 병을 더 얻는 것 같다.'며 한탄을 자주 했었다. 큰 탈 없이 이날까지 지내온 나는 그 말을 그냥 흘려 들었었는데 내가 병원을 다니다 보니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누구나 다 아는 병원을 다닌다는 순간부터 마치 큰 병이 있는 듯했다. 병원 안에서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결재하고, 검사받고, 약을 타고, 진료를 받느라 하루 온종일 있다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버린다. 대기실에 앉은 많은 사람들의 얼굴빛도 그리 밝지도 않은 건 내 느낌일까. 오늘은 무슨 말을 들을까 초조하고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일신상의 사유', 퇴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