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퀘스트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는 건 쉽지가 않다.
늘 가슴속에 사표를 품고 산다고 하지만 그걸 턱 하고 내놓는 건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사표를 던졌다.
평소에 회사 팀원들에게
- 회사가 널 평생 책임져주지 않아. 새로 시작할 수 있으면 뭐든 도전해봐
라고 늘 잔소리했었다. 회사 상사들이 들으면 미친 소리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용기 내서 더 많은 도전을 해 보지 못한 스스로를 반성했던 나였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시간은 지나 30대 중반이 넘었고 경력을 뒤집어 무언가를 바닥부터 새로이 하기에도 두려움이 생겼다. 혼자일 때는 알아서 결정하고 스스로만 책임지면 됐었는데 결혼하여 남편과 한배에 타고나니 남편의 직장 지역, 경력 등이 나와 함께 고려되어야 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을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내 경력이 단절될 수 있겠구나 싶더라. 경단녀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던 거다. 두려웠다. 아이를 낳고 난 이후 내 삶의 모습이 그려지질 않았다.
그럼에도 이젠 잠깐 멈추었다 가야 하는 시기구나 싶었다. 병원에서 안 좋은 말을 듣고 나니 그제야 내가 늘 하던 말을 스스로에게는 해당되었구나 했다. '그래.. 회사가 내 인생을 평생 책임져 주지 않아..' 매달 찍히는 통장 속 급여이체'에 매여 정작 인생 속에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을 거란 두려움이 더 컸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는 게 나도 힘들었지만 팀에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병원을 다니고 있는 걸 모르는 팀원들에게 '건강상 문제'라고 이유를 들먹였지만 한창 마감으로 바쁜 와중에(사실 365일 마감이지만..) 갑작스러운 사표 이야기를 꺼내는 게 배신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인수인계 시간으로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을 두고 퇴사준비에 들어갔다. 새로운 업무에서는 배제가 되었고 가지고 있던 프로젝트들에 대해서도 정리에 들어갔다.
퇴사 당일. 남은 연차를 퇴사일 까지 두었기에 화요일이라는 애매한 때가 나의 마지막 출근이었다. 항상 도면들로 가득 차 있던 책상 위가 모니터 두 개, 전화기로 휑해졌다.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나와 건물 밖을 바라보는데 매일 오고 가던 길을 다시 한번 되돌아서 보게 되더라. 익숙해서 별생각 하지 않아도 걸어 다니던 길인데 내일부터는 일상이 아니겠구나. 해 질 녘의 어둑어둑함에 젖어 흔히들 말하는 시원섭섭함이 밀려왔다. 지방에 있던 남편은 반차를 내고 올라와 주었다. 회사 앞 까지 와준 남편 차에 올라타니 남편이 꼬옥 끌어안아주었다.
- 그동안 고생 많았어. 앞으로 잘 될 거야 걱정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