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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오 Apr 11. 2021

첫 난임병원 방문

인생퀘스트


서울스퀘어 건물은 옛날 대우빌딩일 때부터, 미생에 나올 때까지 친숙한 건물이었지만 그 큰 덩치 속에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건축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친숙한 건물일 수도 있는 이 건물에 산부인과 진료로 내가 첫 방문을 할 줄이야.. 늘 그렇듯 처음 가는 곳에 대한 두려움으로 몇 번 출구인지 두 번 세 번 재 확인하고, 그래도 헷갈릴까 봐 지도 어플을 켜 두고 사파리에는  병원 홈페이지의 '오시는 길'을 열어두었다. 서울역 9번 출구. 다행히 헤매지 않고 찾아갔고 지하철 역에서 서울스퀘어가 연결되어 있어 정신없는 서울역과는 달리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내가 간 난임병원은 서울스퀘어 2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동네병원을 다니다 전국구 규모의 산부인과를 오니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잠시 구경꾼이 되어 바쁜 발걸음에도 주변의 모든 것들이 눈요기가 되어 흥미로웠다. 몇 시간 뒤 충혈된 눈으로 나올 건 생각하지도 못하고서 말이다.

첫 난임병원 방문을 한 줄로 정리하면 '대형병원의 신박한 진료시스템의 사용방법 숙지의 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검사와 진료, 상담 등등 모든 게 분화되어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미리 카톡으로 받아놓은 임시 바코드를 진찰권으로 바꾸는 일부터가 시작이었다.

바코드 진찰권 하나 달랑 들고 간 곳은 초진 진료실. 군데군데 소파가 왜 이리 많나 이때까지만 해도 의아했는데, 기다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이것도 부족했다. 앞에 5명이 있었고 나처럼 혼자 온 사람도 있었지만 엄마와 함께 온 모녀, 남편과 함께 온 부부도 주변에 많이 보였다. 혼자 잇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나 혼자 섬에 버려진 듯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더라.

내 차례가 돼서 들어가 보니 간호사분이 초진 상담지에 대해 몇 마디 물어보셨다. 기존 병원에서 가져온 의뢰서도 함께 제출했는데 분명 친절하게 대하는데 친절하지 않은 차가운 느낌은 무얼까... 물론 이 사람들도 많은 이들을 다 상대한다고 얼마나 곤욕이겠는가. 눈앞의 웃음 뒤에 힘듦이 보였다.

무엇보다 초진 진료실에서 중요한 내용은 병원'어플'사용이었다. 어플을 깔게 하고 앞으로의 사용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이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늘 기계치로 통했는데 역시나 한 번에 알아먹는 척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간호사가 같은 말을 두 번, 나는 실수 한번. 그러고 나서야 감이 왔다. 간호사 분도 힘들만하다.

첫 진료를 보려면 또 다른 과정이 필요했다. 수납을 하고 정밀초음파를 봐야겠다. 받은 안내문에는 내가 해야 할 내용이 '1번 수납, 2번 초음파, 3번 주치의 방 앞으로 가서 어플 확인 버튼을 눌러라.'로 나와있었다. 넓은 병원 내를 까먹지 않고 돌아디니는 미션지와 같았다. 10만원 가까운 돈을 수납하고 초음파 보는 곳 앞에 대기하고 있으니 마치 오늘의 동기모임처럼 처음 오는 사람 두어 명을 모아 초음파실 사용에 대해 알려주었다. 간호사 질문으로 본인 확인을 위해 스스로를 읊는데(생년월일과 이름) 옆사람이 듣고 있다 생각하니 민망하더라. 옆사람도 같은 기분이었는지 '83년생 누구예요...' 하는데 점점 끝이 흐려졌다. 그래서 그런지 둘이 곧바로 등 돌려 옷을 갈아입었다. 머쓱한 건 내 기분인 건가.

기존에 다녔던 산부인과에서는 담당 주치의가 진료와 초음파를 한 번에 보는데 여긴 다른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셨다. 첫 정밀 초음파는 진료를 보는 의사선생님이 보신다고했다. 초음파실 앞에 '오늘 000선생님'이라고 적혀있었다. 그 이름이 낯익어 뭔가 이름 있는 선생님이 봐주신다 하니 다행이다 싶기도 했지만 막상 초음파를 볼 때 한마디 말도, 설명도 없이 진행하는 게 이상하리만큼 어색했다. 내가 무생물이 된 것마냥 다뤄지는 느낌도 들었다.

- 저.. 어떤가요...?

- 설명은 진료실에서 들으세요.

딱 잘라 말하는 선생님의 말 이후 입을 다물었다. 어색함의 2-3분이 지나고 드디어 진료실 앞으로 이동했다. 이름이 호명돼서 들어가기 전 까지만 해도 그나마 여유가 있었다. 일단 10시 예약이었는데 진료실 앞에 오니 이미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지치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멘탈도 살짝 털려있었기에 이제 진료만 보면 점심 먹으러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진료실을 나서면서 힘 풀린 다리를 주체할 수 없었고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전 병원보다 더 안 좋은 결과를 들었기 때문이다. 진료실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내용이었다. 여기만 오면 조금 더 수월하게 퀘스트를 수행하려나 했던 마음에 비웃기나 하듯 앞으로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음을 통보받았다.

집에라도 바로 갈 수 있을 줄 알았더니 내손에는 다시 수납받아 검사받아야 할 목록이 줄줄이 적혀있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처럼... 후...

이번에는 수납하면서 남편의 진료를 위해 남편의 환자등록도 함께 했다. 남자는 여자보다 올 일이 적을 거라고 굳이 인터넷 가입까지 안 해도 된다며 환자 번호만 받아가면 된다고 했다. 남편에게 '환자'라 지칭하는 걸 보고 한번 더 울컥해졌다. 나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환자'로 지칭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미어졌다. 미안해.. 미안해..

심전도를 시작으로 채혈과 소변검사를 해야겠다. 피를 도대체 몇 통을 뽑는 건지 내 이름의 스티커가 계속 나왔다.

-이만큼이나 뽑아요?

-더 있어요. 더 있어요.

10통 정도 뽑은 듯하다. 아프진 않았으나 정말 환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검사도 마치고 병원을 나서는데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그냥 그냥 안 좋았다. 앞으로가 막막하고 두렵고 무서웠다. 병원에 온 걸 알고 있던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별 말없이 안경테 고친 이야기나 해서 욱하는 마음에 그냥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엄마는 흠잡힌다며 주변은 물론 산부인과 진료에 대해 남편한테도 일절 말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랬던 엄마는 정작 나에 대해, 내 마음은 보듬어 주지도, 들어주지도 않는 것이 화가 났다. 아무리 내가 감당해 넘어야 할 산이라지만 화가 났다. 점심 먹는 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점심식사를 위해 줄 서 있는 직장인들 사이를 걸으며 소리 없이 줄줄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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