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퀘스트
대형병원이 다 좋은 건 아니겠지만 어른들 눈에는 대형병원으로 가야만 맘이 놓이는 그런 게 있나 보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몇 번 대형 난임 병원 이야기를 꺼냈지만 번번이 흘려들었다. 그런데 AMH(난소나이검사) 결과가 좋지 않지 않자 병원을 옮겨 좋든 안 좋든 하는 데까지 해봐야겠다 싶었다. 처음 산부인과에서 들었던 것처럼 혹여나 '결혼한지도 얼마 안 됐으면서 벌써 난임병원으로 가요?'라고 하면 민망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할 듯했다.
사람들이 카페나 sns 등등을 찾아보고 좋은 선생님을 묻고 따져 예약하겠지만 나는 생각보다 그런 것에 좀 무딘 편인지 선생님을 인상 투표하듯, 혹은 수박 겉햟기같이 '한 번쯤은 누구나 다 들어본 병원, 난임 특화병원이라더라! 그래? 그럼 거기로 하지 뭐.' 단순히 결론 내렸다. 담당의를 선택할 때는 홈페이지 사진 상 왠지 선하게 생긴 여자 선생님으로 매우 주관적 판단하에 인기투표하듯 결정했다. 그리고 난임병원 홈페이지에는 '방.문.시.기'에 대해 명확히 적혀 있었다.
"생리 2~3일째 내원하시면 바로 난임 검사를 실시하여 내원 횟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상담을 원하시면 평일 오후에 내원하시면 자세한 상담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적힌 내용까지만 알아둔 뒤 생리터지는 날을 기다렸다. 그동안 다니던 산부인과에 들려 차트를 받으러 갔다. 데스크 간호사분에게 차트를 가지러 왔다고 했더니 이유가 뭐냐고 물으셨다.
-0병원으로 가보려구요.
-아...
간호사는 외마디와 함께
-진료의뢰서가 낫겠네요. 원장선생님께 말해놓을게요.
하는데 씁쓸해 보이는 건 내 느낌일까.
남편은 병원을 선택하고 옮기고 다니는 건 우리의 자유라고 했다. 맞는 소리다. 그런데 왠지 스스로가 호들갑 떠는 거 같고 유난스럽게 구는 거 같이 보이는 건 왜일까. 내가 소심한 것도 있지만 산부인과를 다니면서 괜한 것에 상처받고 곱씹어지고 하는 건 사실이다.
늘 그렇듯 담담히, 그리고 약간 혼내듯 말해주는 원장선생님은 마지막 진료에서도 담담히 내 진료기록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꼼꼼히 의뢰서를 적어주셨다. '0병원에 가면 대략 어떻게 진행할 거다. 금방 돼서 다시 돌아올 거라 생각 드니 걱정마라.'
'걱정마라'를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내가 걱정이 많다고 늘 혼났던 부분이기도 하다. 나도 알지만 누구나 처음 겪는 것에 두렵고 무섭지 않은가.. 울컥해서 염소소리로 '네...'대답하고 고개를 푹 떨군 체 진료실을 나섰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내 얼굴을 금방 읽고서는 기분 맞춰주려 찰싹 달라붙었다. 겉으로는 틱틱댔지만 같이 병원 와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하던지.. 망망대해 위에서 나 혼자가 아닌 것 같아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