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오 Mar 28. 2021

걱정이 현실로

인생퀘스트


몇 달이 그냥 흐르자 조바심이 났다. 주말부부로 생활하면서 남편과 늘 화상통화를 했는데 나의 걱정이 화면 넘어까지 남편에게 전해졌는지 이런저런 말로 나를 다독였다. 하지만 어떠한 달달한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잘 자라 인사하고 누웠는데 문득 버스 타고 지나다니면서 보았던 산부인과 건물이 생각났다. 얼른 핸드폰을 열어 산부인과를 검색했다. 여자 선생님이 계신지 확인하고서 다음날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다.

회사에는 집에 일이 있다고 연차를 썼다. 예약한 날 산부인과를 가려는데 몹시 긴장되었다. 무슨 죄지은 사람도 아닌데 심장이 벌렁벌렁거렸다. 진료실 안은 작고 아담했다. 원장 선생님의 책상 뒤로 커튼이 있었고 거기엔 굴욕 의자가 있는 듯했다. 체구가 작고 약간 차가운 인상의 원장 선생님이 옅은 미소로 반겨주셨다. 나와 함께 들어온 간호사 선생님이 선생님 책상 앞에 놓인 의자로 안내해주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숨을 돌리자 선생님은 방문한 이유와 결혼을 언제 했는지 등등을 물어보셨다.

- 결혼한지도 얼마 안 됐는데 뭐 그리 급해요.

그리고 초음파를 보자고 하셨다. 초음파상으로는 아-무 문제없고 걱정하지 말라하시며 날짜를 정해줄 테니 그 날 '숙제'를 하고 지켜보라 일러주셨다. 가끔 드라마에서 들었던 단어였다. '숙제'. 꼭 그런 단어가 나오면 여자가 야시꼬롬하게 옷을 입고 나와 애걸하는 것처럼 그러더라. 남편에게 '나도 그래야 해?'라고 했더니 빵 터졌다. 상상이 안됐나 보다. 남편은 의무감에 사로잡힌 것처럼 하지 말자고 그냥 편하게 이 시간들 자체를 즐기자고 했다.



한 달, 두 달, 세 달 숙제하는 달이 늘어갔다. 어떤 달은 생리가 제때 터지지 않았고, 어떤 달은 한 달에 두 번 터지기도 했다. 난포를 확인하고 다음날도 병원을 방문했는데 그새 사그라지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자 선생님이 AMH(난소나이검사)를 하자고 먼저 제안을 하셨다. 갑자기 나온 단어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 표정을 보고 선생님은 알아채시고는

- 수치가 그렇게 잘 나올 것 같진 않지만 걱정할 거 없어. 겁먹지 마. 자긴 너무 걱정이 많아.

처음부터 먼저 검사하지 않았던 건 나이가 있지만 초음파상 특이 이상이 없고 아이를 갖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자연임신을 시도했던 거였다고 하셨다. 그러나 몇 달 지켜본 결과, 난소나이검사를 하고 이후의 진료 방향을 정해야 할 거 같다는 거였다. 덧붙여 나이가 있기에 검사 결과가 엄청 좋게 나오진 않을 거라고도 하셨다. 밖에 나와 간호사 선생님에게 간단한 설명을 듣고 피를 뽑았다. 검사 결과는 따로 오지 않고 전화로 알려주는데 뭔가 문제가 있으면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김원장님에게 직접 들으셔야 할 것 같아요. 예약일자 잡아드릴게요

덜컥했다. 서둘러 예약을 잡아 병원으로 달려갔다. 난소나이검사에서 수치가 1.0 이상 이어야 하는데 그 이하로 떨어져 나왔으며 나이로 환산하면 40대 중반으로 나왔다고 했다. 임신을 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서둘러야 한단다.. 엄마의 폐경 여부와 그 시기도 함께 물어보셨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는데 머릿속이 하에졌다. '이걸 어떡하나..' 그 자리에 앉아 어떠한 결정도, 무슨 말도 안 나왔다. 남편에게는 무어라 말을 해야 하나 걱정도 됐다.

돌아오는 버스에 앉아있는데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사연 있는 여자처럼 사람들이 볼까 민망해서 울음을 닦아가며 애써 고개를 돌려 창밖을 응시했다. 봄햇살은 따사로웠는데 내 마음은 얼어붙어버렸다.

작가의 이전글 결혼과 함께 시작한 임신 준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