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도 감정입니다

9화 참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지키는 감정

by 유진오


나는 오랫동안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고 싶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유치하다고 생각했고,

화를 참는 것이 어른스러운 일이라 여겼다.


억울해도 웃었고,

속이 뒤집혀도 “괜찮아”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그건 배려처럼 보였지만,

실은 나를 포기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참아온 감정이 터졌다.

소리치지 않았고, 대신 조용히 울었다.

서러워서가 아니라,

내 감정을 늘 감추고 살아온 내가

너무 낯설어서였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화를 내는 법을 몰랐고,

그래서 나를 지키는 법도 몰랐다.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더 조용하고 무겁게 남는다.

몸이 아프거나,

사소한 일에 예민해지는 방식으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 이후, 나는 아주 작은 말을 꺼내보기로 했다.

“그 말은 나에게 상처예요.”

“지금 이 상황이 불편해요.”

그 짧은 문장들이

나를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분노는 나쁜 감정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어떤 선을 넘지 않기를 바라는

작은 신호였고,

나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의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분노 뒤에는 언제나

수치심이 조용히 따라왔다.

감정을 터뜨리고 난 뒤,

무너지는 건 언제나 나였다.


아이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나면

그 눈빛이 나를 무너뜨렸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내 안에서 조용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또 그랬구나.”

“또 상처 줬구나.”

그럴 때면 더 미안했고,

더 작아졌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건,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는

절박한 진심이었고,

‘다시 더 잘하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보았다.

“오늘도 지켜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알고 있었어.

지키고 싶었단 걸.

정말, 그 마음은 진심이었어.”


그 말이 모든 것을 용서해주진 않았지만,

사라지고 싶은 마음을

조금은 붙잡아주었다.




오늘의 여백

오늘, 당신 안에서 올라온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셨나요,

아니면 밀어내셨나요?

그 마음을 이곳에 조용히 내려놓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