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늘 희생당하고 있다.

호의가 권리가 되는 세상

by 강인함

매일 업무 전화를 수 없이 받는다.


사실 예전만 해도

문의 전화로 통화를 5분 넘게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다른 부서에서 은 외근으로 통화가 어렵고

인원이 없다는 이유 어려움을 이해하고는 있었지만,


인원이 충원될 때까지

길게는 1시간 넘게 통화를 해야 하는

기술지원 업무를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인원이 충원되고

시간이 지나도

떠 맡긴 업무를 다시 가져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


몇 번은 계속 오는 전화 때문에

원래 본업이 많이 지연 되어서

전화를 받지 않거나, 전원을 꺼두기도 했다.


그러고 나니 이제는 다른 부서에서

"전화를 왜 안 받냐" 불만의 목소리와


수차례 계속 오는 전화에

하는 수 없이 연락을 받자마자 전화를 걸어온 사람들 한테도 짜증 섞인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라.


이제야

호의가 권리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고

아무도 관심이 없고 책임을 떠넘겼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나도 불만의 목소리를

직접적인 구두와 메일로 전했는데,


개선은 잠깐 뿐이었고,

결국은 다시 원점이 되더라


사실 오는 전화의 10할 중 8할 이상은

대부분 인터넷으로 조금만 찾아보거나,

미리 배포한 매뉴얼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들인데


내게 연락을 시도 때도 없이 하는 일부 사람들도

지금의 직업을 가지고 몇 년 이상씩 근무를 해왔는데도,

직업윤리 의식이 없나 싶을 정도로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버튼을 딸깍 누르기만 하면 음료가 나오듯이"

단지

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찾아볼 노력조차,

배울 노력조차 안 한다는 게 너무나 불편해졌다.


오늘도 오후 반차를 쓰고

개인적인 급한 용무를 보면서도 쉬는 날까지

전화가 쉴 새 없이 오길래


이제는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모든 인간들의 연락을 차단했다.


그러고 신경을 끄고 휴식을 취하니

그제야 갑작스럽게 다시 몰려온 편두통과

예민했던 마음이 다시 편안해지더라.



호의는 자발적인 것이지, 의무가 아니다.

상대방이 배려와 선의에 비롯된 행동을 가지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호의의 본질은 훼손된다.


누군가 나에게 선의를 베풀었다면 그것을 존중하고 감사히 여기도록 하자.
그것이 사람다운 참된 도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조용한 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