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000줄의 코드로 쓴 향수(香水)

혹은 누군가의 미래

by 팀포라

차가운 모니터 너머로 날아온 화살

얼마 전, 아내의 향수 사업을 돕기 위해 수개월간 밤을 지새우며 깎아 만든 사이트를 커뮤니티에 공개했습니다. 개발자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제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결과물이었기에 설렘은 컸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서늘했습니다.

"UI가 너무 복잡해서 못 쓰겠다", "디자인 감도가 떨어지는 걸 보니 투자를 전혀 안 한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왜 한글 지원이 완벽하지 않느냐"*는 날 선 비판들.

특히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한 이용자의 댓글은 제 심장에 꽤 깊은 생채기를 냈습니다. 수만 줄의 코드와 씨름하며 보낸 그 고독한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성의 없는 결과물'로 비춰졌다는 사실이 저를 멈춰 세우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정의하는 '투자'와 '감도'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요?


'복잡함'이라는 이름의 압도적인 세계관

사람들이 말하는 '복잡함'은 사실 제가 설계한 '압도적인 기능'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저는 단순히 상품을 나열하고 결제 버튼을 만드는 '가게'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향기라는 무형의 감각을 데이터화하고, 유저와 상호작용하는 '지능형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이 사이트의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혁신들이 숨 쉬고 있습니다.

지능형 콘텐츠 파이프라인: 텍스트로 작성된 뉴스레터가 AI를 통해 자동으로 팟캐스트 음성으로 변환되고, 이는 다시 SNS인 스레드(Threads)에 실시간으로 최적화되어 배포됩니다. 운영자의 손길을 최소화하면서도 콘텐츠의 생명력을 극대화하는 자동화 엔진입니다.


놀이로 치환된 알고리즘: 타로 카드를 통해 오늘의 운세와 어울리는 향을 점치고, 룰렛과 퀴즈 이벤트를 통해 브랜드와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이는 단순한 이벤트 페이지가 아니라, 유저의 행동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정교한 설계의 결과입니다.


1만 명의 데이터가 빚어낸 조향: 감에 의존하는 추천은 지양했습니다. 이미 1만 명에 가까운 유저들의 향취 데이터를 확보했고, 이를 분석해 개개인의 취향을 족집게처럼 맞춰내는 개인화 추천 엔진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기 위해 저는 56,000줄의 코드를 써 내려갔습니다. 30여 개의 화면과 40여 개의 API 서비스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이 거대한 기계가, 누군가에겐 그저 '익숙하지 않아 복잡한 사이트'로 보였을 뿐입니다.


숫자로 치환한 헌신

'투자가 없었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 저는 이 프로젝트를 냉정한 시장의 논리로 환산해 보았습니다. 만약 이 정도 규모의 시스템을 전문 개발 팀에 의뢰했다면 어떤 견적서가 나왔을까요?


프로젝트 가치 분석(예상 투입 비용)

인적 자원

리드 개발자 포함 3인 표준 팀 구성

월 약 3,000만 원 이상의 인건비


개발 기간

설계, 구현, QA 포함 약 6개월

총 1.8억 원 내외


기술 자산

1만 명 향취 데이터 엔진 및 AI 자동화

외주 시 최소 2.5억 ~ 3.5억 원


코드 규모

56,000 Lines of Code


단순 산술 불가한 무형의 자산

저는 이 억 단위의 가치를 아내를 향한 마음 하나로 직접 감당했습니다. 자본의 논리로 쳐진 화려한 인테리어는 아닐지라도, 건물의 뼈대와 엔진실만큼은 대기업의 시스템보다 더 견고하고 지능적으로 설계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쏟아부은 이 거대한 에너지가 '투자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선구자의 고독, 그리고 앞서가는 자의 숙명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할 때 대중은 늘 거부감을 먼저 드러냅니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도, 키오스크가 도입될 때도 사람들은 '불편하고 복잡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것은 '표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단지 조금 더 빨리 걷고 있을 뿐입니다.


대한민국 최초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생소한 이 시도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장 이해되지 않는 '불친절함'으로 보일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익숙함에 안주하여 평범한 쇼핑몰을 만드는 대신, 욕을 먹더라도 미래의 기준을 제시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비난의 목소리에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저는 다시 키보드 앞에 앉습니다. 56,000줄의 코드는 제가 쏟은 시간과 열정을 가장 정직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복잡하다"는 비판은 더 세심하게 다듬으라는 채찍질로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궈낸 기술적 성취와 그 안에 담긴 진심만큼은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1.8억 원의 가치를 상회하는 이 시스템이, 아내의 향수가 세상 모든 사람의 살결에 닿는 그날까지 가장 완벽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앞서 나갈 것이고, 언젠가 대중이 우리의 속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비로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복잡했던' 사이트가 사실은 얼마나 세심하고 거대한 혁신이었는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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