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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나무 Apr 12. 2023

김수영 : ‘바로 보기’의 열정과 사랑


   김수영은 일제강점기의 민족 해방과 연이은 한국전쟁, 4·19 혁명과 5·16 군사 정변의 사회적 변화를  시작(詩作) 배경으로 시의 존재를 탐구하여 한국시의 영역을 확장하였다. 그의 시와 시론은 후대 시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 유학 중에 연극 연출 지도를 받기도 하고 일본의 모더니스트 시와 영미의 문학작품들을 접한 김수영은 귀국하여 박인환, 김경린, 양병식, 임호권, 김병욱 등과 함께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펴내면서 모더니즘 문학을 표방하는 ‘신시론’ 동인을 결성하였다. 4·19 혁명을 겪으며 김수영은 시적 인식에 큰 전환점을 마련한다. 시의 형식에 산문성이 강화되고 혁명과 자유에 대한 이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특히 1968년 2월에 창작의 자유의 억압을 문화인의 책임이라고 한 이어령과의 참여 시 논쟁에서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정치권력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자유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에 묶여 용기 없는 시인의 얼굴에 “침을 뱉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론인 「시여, 침을 뱉어라」(주 1)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머리나 심장이 아닌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온몸시론’을 제시한다. 

  김수영의 작품 세계의 특징은 일상의 언어를 시어로 사용하고 현실을 바로 보기, 즉 직시하기이다. 현실을 직시의 중요성은 시적 어조에 변화를 주었다. 연이은 혁명의 실패로 적을 포용하고 극복하려는 감정보다는 현대의 모순을 사랑으로 감싸겠다는 사랑의 시를 추구한다. 사랑을 주제로 한 시들은 적대적인 관계를 고민하고 조화를 찾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후기 시의 미학적 성취를 이룬다. 


     난로 위에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節度)는

     열렬하다

     간단(間斷)도 사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할머니가 계신 방에서

     심부름하는 놈이 있는 방까지 죽음 같은

     암흑 속을 고양이의 반짝거리는 푸른 눈망울처럼

     사랑이 이어져가는 밤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만드는 기술을 안다

     눈을 떴다 감는 기술-불란서혁명의 기술

     최근 우리들이 사·일구(四·一九)에서 배운 기술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소리 내어 외치지 않는다    -김수영, 「사랑의 변주곡(變奏曲)」부분 (주 2)


  51행이라는 긴 길이의 이 시는 압축과 절제를 바탕으로 한 기존의 단시 전통과 다르다. 산문 같은 장황한 진술로 전개되지만 빠른 리듬감으로 읽기에 쉽다. 앞 행의 끝 구절을 다음 행에 걸치는 기법을 사용하여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내용과 형식을 일치시켜 낯설거나 ‘사랑’과 ‘혁명’ 같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을 결합시키고 있다. “사랑을 만드는 기술”과 “혁명의 기술”을 “이어”놓으면서 모든 공간적, 시간적 거리를 사랑 안으로 감싸고 있다. 

  김수영 시는 예술성과 사상성을 결합하려 한 노력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일상적인 언어뿐만 아니라 비속어를 사용하고 산문체를 기용하는 등, 시의 형식을 자유롭게 하였다. 삶과 문학을 하나로 잇고자 하는 그의 실천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주 1. 1968년 4월 팬클럽 주최 부산세미나에 참석하여 발표한 시론

주 2. 김수영, 『김수영 전집 1』, 민음사, 1981.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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