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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짐 지듯 염탐하기

새로운 공간, 관계를 대할 때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나요?

by B급 사피엔스


작년 이맘때쯤 호젓하고 조용한 삼각산자락 주변으로 유유네는 터를 잡았다. 첫인상은 삼각산의 맑고 깨끗한 정기 때문이라 그런지 동네가 좀 쌀쌀하게 느껴졌다. 참교육의 산실인 ‘삼각산재미난학교’ 입학을 위해(실제 존재하는 학교 이름이다), 14년 만에 이사라 낯설고 새롭다. ‘이 동네에는 뭐가 있나?’ 구석구석을 살폈다. 동네 마트, 식당, 미용실, 혼술 단골집 등 새로 뚫을 곳이 많다.


국민마트. 주변에 있는 가장 큰 대형마트다. 간단한 장을 보러 매일 같이 드나드는 곳이다. 150미터 정도 거리로 집에서 매우 가깝다. 놀라운 건 24시간 영업을 한다. 당연히 밤 11시 정도에 문을 닫을 거라 생각했던 나는, 몇 개월이 지나서야 24시간 영업을 알게 됐다. 그 덕에 새벽이고, 이른 아침이고 생각날 때마다 참새 방앗간처럼 드나든다. 가장 자주 사는 품목은 두부와 애호박, 감자. 된장찌개나 고추장찌개를 자주 해 먹는 편이다. 요즘은 줄여서 ‘국마’라 부른다.


청수냉면. 가게 간판은 냉면집이지만 만두를 포장하러 자주 들린다. 단골인 편인 데도, 냉면을 지금까지 먹어본 적 없다. 김치왕만두 5개에 4,500원. 가격이 세월을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한 가게다. 만두에 트러플 오일을 잔뜩 뿌려 먹는 걸 좋아한다. 담가 먹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김치만두와 트러플 오일의 조합은 묘하게 궁합이 잘 맞는다. 트러플 오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강추한다. 서로 전혀 다른 맛과 향이 충돌되어, 서로의 맛을 극대화시킨다.


이 지역의 랜드마크는 광산 사거리. 그런데 광산 빌딩은 없고, 사거리만 있다. ‘광산 빌딩은 어디 있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아이와 동네를 거닐고 있는데, 지나가던 행인이 대뜸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며


“어~ 저기에 옛날에 어엄청 큰 광산 빌딩이라고 있었어. 아주 유명했지! 없는 거 없이 별거 별거 다 팔았어. 옷도 팔고, TV도 팔고, 뷔페도 엄청 크고, 사람이 아주 바글바글했지. 떼돈 벌었지, 아마? 근데 망했어! 시대가 바뀌었잖아잉? 요즘 누가 그런데 가나? 다 백화점이나 마트로 가지. 그래서 문 닫은 지 한참 됐어. 지금은 그 자리에 저기 보이지? 건물 통째로 헐고 저 병원이 들어왔어. 그래도 하도 광산 빌딩이 유명해서, 이름만 광산 사거리라고 하는 거야”


속사포 랩처럼 순식간에 이야기를 쏟아내더니, 쿨하게 얼굴도 한번 안 쳐다보고 휑~ 갈 길을 간다. 광산 사거리의 유래와 광산 빌딩의 흥망성쇠를 아주 짧은 순간, 뜻밖의 장소에서 알게 되었다.


촌놈. 광산 사거리에 다다르면 모퉁이에 보이는 과일가게. 과일을 주르륵~ 늘어놓고, 야채며, 반찬이며 장 볼거리를 저렴하게 판다. 아이랑 산책하며, 종종이 가게를 들려 무엇을 파는지 살펴보고, 가끔 과일을 사다 먹는다. 촌놈은 금세 우리 집에서 유명한 가게가 되었다. 집에 과일이 떨어졌거나, 과일 이야기만 나오면 아이와 나는 동시에 우스갯소리처럼


“촌놈?” “촌놈에서?” “촌놈 가게?” 이런다. 이름도 재밌다. 촌놈.


광산 사거리에서 수유역까지 더 내려가 보면 ‘수유식자재마트’가 있다. 모든 물건이 크고 거대하다. 1.8킬로짜리 초거대 스팸 통조림도 있다. 아이랑 신기하게 쳐다보며, 들어 올려보기도 했다. 수유역에는 종종 들리는 교보문고, 아이가 친애에 맞이하는 아트박스, 온 가족의 생필품 천국 다이소도 있다. 동네 정보는 아이가 나보다 빠삭하다. 어디서 마을버스를 타고, 어떤 버스가 수유역 쪽으로 가는지, 외할머니 집으로 가는 버스는 몇 번인지, 타는 곳과 버스 노선을 줄줄 외우고 있다.


‘언제 이렇게 컸지?’

이사 올 때 가장 큰 걱정거리가 아이가 갓난아이일 때부터 자라고 골목대장처럼 누비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는 것이었는데 어느새 동네 박사가 되어있다.


일 년 정도 지내보니, 삼각산이 반갑다. 주말에 아이랑 처갓집을 가거나, 도심으로 나들이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멀리서 삼각산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 말이 동시에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집에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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