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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민 Apr 16. 2017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

완벽에 가까운 타협만이 있을 뿐

식장의 선택


딸의 이야기


진부하지 않은 결혼식은 나의 꿈이기도, 아빠의 꿈이기도 했다. 그저 막연하게 꿈꾸었던 나의 결혼식이 아름다웠던 건 현실적인 고민을 덜어낸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네팔을 여행하며 아빠와 꿈꾸었던 결혼식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생각과는 다른 점이 정말 많았다. 하나씩 나타나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결국 나의 결혼식을 진부하게 만들기 시작했고, 나의 초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주 돈이 많아야하거나, 오는 사람들에게 결례를 범해야하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하객들도 파티처럼 즐길 수 있는 결혼식을 꿈꿨지만 첫번째 장애물은 공간이었다. 양가 부모님께서는 오히려 당신들 손님은 얼마 없으니 우리 편한대로 하라셨지만, 나나 예비신랑이나 지인이 많은 편인데다 누구 하나 서운하게 하고싶지않은 마음이 강해 하객 수를 줄이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웠다. 적어도 5백명은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이미 꿈 속에서나 가능했던 '작은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깨지는 순간이다. 인터넷이나 플래너를 통해 여러 공간을 둘러봤지만 딱 마음에 드는 공간을 찾기는 참 어려웠다. 공간이 마음에 들면 수용인원이 적고, 수용인원이 충분하면 또 너무 화려한 웨딩홀스러운 분위기가 싫었다. 모두 처음에는 특별한 결혼식을 꿈꾸지만 결국 틀에박힌 결혼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 옳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더 보고 안되면 그냥 원했던 것들 다 포기하겠다 생각할 정도로 지쳐있을 때 '완벽'에 가까운 타협이 가능한 공간을 우연히 발견했다.


올림픽공원 앞에 있는 고등학교의 100주년기념관은 주말마다 웨딩을 진행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콘서트홀로 만들어진 공간이라 웨딩홀스럽지도 않았고, 건물에서 풍겨져나오는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공간의 특성상 하루에 한 팀 내지 두 팀 정도의 웨딩만 받고있어 시간 제약 없이 식을 진행하고 싶었던 우리에게 더욱 적합했다. 계단형으로 만들어져 무대가 아래로 보이는 공간 형태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 구조가 다른 웨딩홀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의자가 없는 구조라 인원이 많아도 수용이 가능했고, 식사 역시 학교의 학생식당에서 케이터링을 이용하기에 우리가 원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다. 로비 공간이 넓어 식전행사로 칵테일파티나 사진전도 가능했기에 신부대기실을 만들지않으려던 내게도 안성맞춤이었다. 위치도 지하철 역에서는 조금  걸어야하지만, 고속도로 출구와 가까워 지방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올라오시는 신랑측 가족 손님들이 오시기에도 좋았다. 아빠가 걱정한 주차 문제 역시 학교 운동장을 활용하기에 걱정이 없었다. 물론 완벽하지만은 않았다. 버진로드를 내려갈 때 계단을 내려가야하고, 하객들이 식사를 하는 학생식당인지라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는 등 나열하자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단점들이 존재했지만, 그 전에 지칠 정도로 다녔던 다른 웨딩홀에서의 실망감에 비하면 이 공간은 내게 더욱 완벽해보였다. 망설임없이 예약을 진행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어릴 때부터 가지고있던 결혼식 장소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63빌딩, 월드컵경기장, 서울시청 등 평생 없어질 것 같지않은 랜드마크에서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서 아이가 자라도 '저기에서 엄마랑 아빠가 결혼식을 했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랐다. 우연하게 찾게된 장소가 '학교'이기에 내 아이가 클 때까지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아서 행복하다. 무엇보다도 이 공간을 결혼식장으로 운영하는 건 2017년 상반기까지만이라고 하니 더 특별한 느낌이다. 마음에 딱 맞는 리미티드 에디션을 구한 느낌이랄까. 공간을 구하고 나니 이제서야 비로소 D-day 카운트다운에 들어갈 수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우연히 만난 '완벽에 가까운 타협'은 조금은 부족한 공간의 단점을 완벽한 순간으로 만들어내고 싶다는 열정을 다시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 공간에서 평생의 약속을 하게 될 순간이 다시 기대되기 시작했다. 이런 게 공간의 마법인가보다.



아빠의 이야기


결혼은 꼭 결혼식장에서 행해져야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대부분의 결혼식장은 틀에 박힌 결혼식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여기서의 최적이란 시간과 비용의 최소화와 화려하고 특별함이 적당히 trade-off 되는 공간을 말한다. 어느 누가 진부한 공간에서 진부한 결혼식을 하고 싶겠는가? 누구나 특별한 결혼식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눈 앞에 있으니 누구나 최적을 찾다보면 최적의 결혼식은 진부한 결혼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혼식은 선남선녀가 만나 평생을 함께 하는 시작이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듬뿍 받는다. 너무 좋은 일이다. 둘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아이들도 낳고 함께 양육하며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요즘은 많은 부부들이 이혼을 하지만, 결혼식의 순간만큼은 행복하게 영원할 것이라는 동화같은 다짐을 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좋은 결혼은 둘만의 약속이 아니다. 한국의 결혼식은 두 사람의 분명한 의지를 밝히고 응원을 얻을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약한다. 결혼식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약속의 증인이 되고 그 둘의 약속이 지켜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서 결혼식은 많은 사람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에서 진행되고는 한다. 결혼식이라는 성스럽고 거룩한 약속이 이루어질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잔치'의 개념이 커서인지 정말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다. 예전같았으면 집 앞 마당이나 마을의 너른 공간을 이용했겠지만, 현대에 와서는 고급호텔의 그랜드 볼룸, 성당이나 교회, 강당 같은 곳을 많이 이용한다. 그저 사람이 모여서 식을 보는 공간만 필요한 것도 아니다. 피로연을 위한 식당, 폐백을 위한 공간, 신부대기실 등등. 결혼식의 처음과 끝까지 아우를 수 있는 부속공간들이 또 필요하다. 잔치를 준비하고 손님을 대접하는 입장에서는 '공간'에 대해서만도 신경써야하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닌 것이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결혼식은 온 마을 전체의 축제이거나, 진정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의 파티로 이루어진다. 기꺼이 하루 이상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정말 가까운 사람들과 보내는 것이다.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가 하객들과 어울려 흥겨운 춤을 추는 장면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다. 축제나 파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부터 음주가무가 필수적이다. 기분 좋은 날 술과 춤으로 모든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신랑신부의 절정의 행복감을 함께 나누기 위함이다.


"아빠, 내 결혼식이 가장 진부한 결혼식이 되고 있는 것 같아!"


결혼식장을 정하기 위해 며칠동안 서울 전역을 돌아다니느라 지쳐있는 딸이 허탈한 마음을 담아 내게 말했다. 우리 둘 다 특급호텔에서의 허망한 결혼식, 교회나 성당에서의 불편한 결혼식, 웨딩홀에서 찍어내는 인스턴트 결혼식이 아닌 진부하지 않은 결혼식을 항상 꿈꿔왔고 많은 대화를 했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정말 어려운 결혼식을 꿈꾼 것이다. 꿈은 꿀 때가 행복하다. 현실은 아버지인 내가 딸과 둘이 결혼식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식의 당사자는 신랑신부와 양가부모다. 둘의 생각의 일치를 보기도 어려운데 여섯명 의견의 일치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상견례 때도 아예 결혼식에 대해서 말도 꺼내지 않았다. 신랑신부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결혼을 실제로 준비하고 있는 딸이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사실 나는 전혀 내 마음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그러나 딸이 가장 마음 쓰이는 사람이 나 일것 같다. 딸은 내가 정말 어려운 진부하지 않은 결혼식을 원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막상 딸이 현실적인 준비를 하면서 좌절하고 스트레스 받는 모습을 보니 괜히 내가 딸에게 부담을 준 것이 아닐까싶어 노심초사 하게 된다. 나는 그저 딸이 스스로 행복하고 즐거운 결혼식을 하기를 바랐을 뿐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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