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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민 Dec 18. 2018

두려우면서도 행복한 경험

끝도없이 나열되는 두려움을 이기는 단 하나의 행복

시간은 왜 이리 빨리도 지나가는지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벌써 8개월차 임산부가 되었다. 임신을 하면 집에서 좋은 거 먹고, 태교 동화책도 읽고, 바느질도 하는 등등 아가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왠지 모를 강박관념이 있었지만, 아가가 태어나기 전 분유값이라도 한 푼 더 벌고싶은 현실의 엄마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딱히 경제적인 이유만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일반적인 안부인사 대신 '몸은 좀 어때?'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날 생각해서 건네는 따뜻한 인사임은 틀림없지만, 호르몬 때문에 더욱 예민해지는 시기라서인지 괜히 벌써부터 나는 사라지고 있는건가,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아가에 더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실제로 출산 때문에 좋은 기회를 마다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었다. 당장 출산을 하게되면 물리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시기가 있으니 아무리 나 자신을 위해 좋은 기회라고 하더라도 죄송하지만 어렵겠다는 거절을 하면서 마음이 참 쓰라렸다. 아직 육아를 시작도 하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경력단절이 시작되는 건가 싶은 프리랜서의 불안감이 훅 다가올 때가 있다. 휴직의 개념이 없는 프리랜서의 나는 잠시잠깐이라도 육아에 몰입하는 동안 경력단절이 아닌 경력종료가 되어버릴까 두려울 때가 많다. 아마도 괜찮겠지, 뭐라도 조금씩 이어갈 일이 있겠지, 나만 열심히 다시 해보면 될거야 싶다가도 막상 진짜 하고싶은 일을 거절해야하는 상황이 되면 갑자기 찾아오는 두려움과 우울함이 있다. 그래서인가 막달을 앞두고도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워 허리가 아프고 숨이 차도 마지막까지 최대한 일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를 발견한다.


막상 출산예정일이 손에 잡히는 날짜까지 다가오니 출산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어마어마하다. 극강의 고통을 경험할 준비가 과연 되어있는가 스스로에게 되물어도 경험해본적이 없으니 당연히 답은 없다. 그렇기에 그저 나에게 찾아올 고통을 있는 그대로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처지 아닌가. 아무리 생생한 선배 엄마들의 출산후기를 봐도 나는 어떤 케이스가 될지 막상 분만실에 들어가기전까지는 모르는 일이니 목숨을 걸어야할 출산이라는 큰 일 앞에 점점 더 작아질 수 밖에 없다. 아가를 볼 생각에 매일같이 순진한 얼굴로 설레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나는 아가를 보는 행복 이전에 찾아올 출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괜히 남편이 부럽기도 하고 얄미워질 때도 있다.


임신을 하고나서 사실 물리적으로는 좋은 게 정말 하나도 없다. 매일같이 속이 울렁거리는 입덧시기를 지나니, 볼 때마다 어색하게도 배는 점점 불러오고, 항상 나를 괴롭게하는 비염도 심해졌으며, 소화불량과 다리저림은 물론, 8개월이 넘어가니 나날이 심해지는 허리와 갈비뼈 통증에 잠도 편히 못자며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내 뱃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보여주는 아가의 태동만이 이 모든 불편함과 불안함을 잠재워준다. 요즘은 아가가 크면서 아기집이 좁아졌는지 꿈틀거리던 태동 대신 밀어내는 태동을 시작했는데 기분이 이상하면서도 너무 신기하다. 내가 이렇게 움직이는 존재를 뱃 속에 품고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비한 경험이기에 그 자체만으로 행복해진다.


출산의 두려움, 경력단절의 두려움, 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 나의 인생이 송두리째 변할거라는 두려움. 사실 나열하자면 두려운 점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지금은 내 뱃 속이 세상의 전부일 작은 생명 덕분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않던 사람을 내가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하고, 천사같은 아이를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키워낼 생각에 기대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너무나 많은 두려움의 산을 넘어야하지만, 내가 지켜주고 사랑해줄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있음을 벌써부터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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