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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Sep 01. 2020

세르반테스

불굴의 사나이

1547년 9월 29일에 세르반테스는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하급 귀족 출신의 외과의사로 빚이 많아 전 재산을 차압 당하고 투옥되기도 하였다. 이후 가족은 바야돌리드와 세비야 등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1569년에 교황의 사절로 에스파냐를 방문한 추기경의 비서가 된 세르반테스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출세를 위해 베네치아에 주둔한 에스파냐 군대에 자원 입대했다.


1571년 10월 7일, 이탈리아와 에스파냐의 연합군이 오스만 투르크군과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레판토 해전>을 일으켰다. 이 때 전투에 참가한 세르반테스는 전투 중에 가슴과 왼손에 총상을 입었고 그 후유증으로 평생 왼손을 쓰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후로도 5년이나 더 군인으로 복무하며 여러 전투에서 활약했다.


1575년 군인생활을 인정받아 추기경의 관료 추천서를 받은 세르반테스는 뛸듯이 기뻐했다. 드디어 자신에게도 출세 길이 열렸다고 생각했다. 그이고 배를 타고 고향으로 향하는 중 그가 탄 배가 해적선의 습격을 받았다.


추기경의 추천서를 본 해적은 그를 몸값이 많이 나가는 부자로 생각해 포로로 삼고 알제리로 데려간다.


해적이 요구한 몸값은 가난한 세르반테스의 가족이 결코 마련할 수 없는 막대한 금액이었다. 절망한 세르반테스는 네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간다. 그는 그때마다 혹독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알제리에 살았던 동포들이 몸값을 대신 지불해 주어 5년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1580년에 에스파냐로 귀국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37세의 나이로 19세의 카탈리나 데 살라사르와 결혼한다.


가장이 된 세르반테스는 군인 시절의 인맥을 이용해 공직으로 진출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생계가 막막해진 세르반테스는 자신의 글 솜씨를 발휘해 시와 희곡 그리고 소설 등을 써서 팔았다.



1585년에 발표된 첫 번째 소설 <라 갈라테아>는 호평을 받았지만 인기를 얻지 못해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이후 갖은 노력으로 천신만고 끝에 말단 관리가 된 세르반테스는 10여 년간 무적함대의 물자 조달관으로 일했으며 나중에는 세금 징수관으로 일했다.


하지만 세금을 받아 맡겨 둔 은행이 파산하는 등 여러 가지 사건으로 고발당해 감옥에 갇혔다.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그가 구상한 책이 <돈키호테>였다. 감옥을 나온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쓴 그는 57세가 되던 해인 1605년에 <돈키호테>를 출간한다.


<돈키호테>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생활고로 인해 출판업자에게 싸게 판권을 넘겨버린 세르반테스는 경제적 이득을 거의 얻지 못했다.


말년에는 신앙생활에 전념해서 아예 수도회에 들어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돈키호테>의 후기작을 내 놓자 이에 분개해 1615년 <돈키호테> 2부를 완성해 자신이 진정한 <돈키호테>의 저자임을 세상에 알린다.


하지만 그 다음 해인 1616년 4월 2일, 수종 증이 악화되어 69세를 일기로 그는 사망한다. 흥미롭게도 이 날은 세익스피어가 사망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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