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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Sep 09. 2020

게르니카

1937년 4월 26일 오후 독일과 이탈리아 공군은 스페인 북부에 있는 바스크 지방의 소도시 게르니카를 3시간 동안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통상적인 장날에 모여있던 게르니카 주민은 독일군의 폭격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으며 7천명의 주민 중 1,654명이 사망했으며 889명이 부상당했다. 당시 성인 남성들은 전쟁터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는 주로 민간인 여성과 노약자들이었다.


독일공군의 하인켈 폭격기는 수백 톤의 폭탄과 소이탄을 끊임없이 퍼부었고, 융커 전투기는 도망치는 민간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기총사격을 가했다.


스페인 극우 군부세력인 프랑코의 요청으로 폭격을 가한 나치 공군은 게르니카를  당시 독일 공군이 새로 발명한 최첨단 무기의 성능을 실험하는 무대로 사용하였다.


게르니카 폭격은 <더 타임스>의 기자 조지 스티어의 현장 보도로 그해 4월 28일 <더타임즈>와 <뉴욕타임즈>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1936년에 시작되어 3년동안 계속된 스페인 내전은 합법적 공화국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서 종교세력과 군대 그리고 극우세력이 시도한 반란이었다.


당시에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은 불간섭 협정을 이유로 공화국 정부의 지원요청을 거부하였다. 그래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세력과 손 잡은 프랑코 군부와 소련과 손잡은 공화국 정부가 싸웠던 국제전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2차 세계대전의 축소판이라 할 만했다.


프랑코 세력의 초기 반란이 실패하고 장기 내전으로 바뀌면서 공화 진영과 파쇼 진영의 군사적 대결 외에도 각각의 점령지역에서 적색테러와 백색테러가 일어났다.


공화국 진영의 테러가 자연발생적인 양상이고 수적으로 제한적이었던 반면 프랑코 진영의 백색테러는 공화파와 좌파의 말살을 목적으로 민간인에 대한 조직적인 테러와 탄압으로 진행됐다.


이때 게르니카의 폭격이 자행되었다.

당시 게르니카는 인구 5천 명의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고, 그 어떤 군사적 공격대상도 없었다. 프랑코는 게르니카 폭격을 통하여 공화파 지역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민중의 저항 의지를 꺽으려는 의도 뿐이었다.


이후 3년에 걸친 내전으로 40만 명이 사망했고 60만 명이 상처를 입었으며 50만 명은 탄압과 보복을 피해 망명길에 올랐다. 내전에서 승리한 파시스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1975년 사망할 때까지 전통과 종교의 기치 아래 36년 동안 스페인을 지배했다.




1937년 4월 파리에서 살던 피카소는 스페인 정부로부터 파리 만국 박람회의 스페인 전시관을 장식할 작품을 의뢰 받은 상태였다. 얼마후 게르니카 학살을 접한 피카소는 원래의 구상을 접고, 게르니카 학살을 다룬 <게르니카>를 자신의 자택 화실에서 완성했다.



작품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황소는 야성을 상징하며 투우장에서 사람을 공격하고 나서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확인한 후 다음 동작을 하기 위해 꼬리를 휘두르며 뒤로 물러서고 있는 모습이다.


그 아래 죽은 아이가 어머니의 팔에 힘 없이 축 늘어져 있다. 유리 조각이나 단검을 떠 올리게 하는 어머니의 혀는 절규를 상징한다. 그림 곳곳에 비슷한 파편들이 보인다.


작품 아래 조각난 사람이 보인다. 잘린 머리는 왼쪽에 있으며 부서진 칼을 쥔채 잘려나간 팔은 중앙에 보인다. 그리고 칼을 쥔 팔 위로 한 송이 꽃이 보인다. 이는 대량학살이 일어나는 전쟁 중에서도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는 희망을 상징한다.


작품 중앙에 두 여인이 슬픔에 잠겨 부상당한 말을 지켜보고 있다. 이것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예수와 그 아래 서 있는 두 명의 마리아를 연상시키며 인류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작품 속 가장 오른편에 폭탄으로 화재가 난 집에서 두 팔을 치켜들고 죽어가는 여인을 통해서 무고한 민중에 대한 파시스트들의 야만적인 잔혹행위를 보여준다.


작품 전체적으로 무채색과 입체주의적인 표현방식을 사용해 인간의 고통과 아픔을 극대화하고 있다. 특히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입체적인 어머니의 얼굴에 나타난 고통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하다. 그리고 그 아래 죽어가는 아이의 얼굴은 그냥 평범하게 표현해 오히려 비참함을 더욱 깊게한다.


이 작품이 완성되고 나서 파리 만국 박람회의 스페인 전시관에 전시되었다.


이후 파리가 독일에 점령당하자 한 독일 장교는 피카소의 아파트에 걸린 게르니카 사진을 보면서 당신 작품이냐라고 물었다. 그때 피카소는 답했다.

아니오, 당신들의 작품이요.


20세기 극단의 시대에 반공주의와 국가 테러리즘에  의한 무고한 민간인 학살이 세계 곳곳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그 때마다 게르니카는 세계인의 마음속에 인류의 고통을 확인시키주며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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